2016년 6월 12일 일요일

나이로비에서 아디스아바바까지 From Nairobi to Addis Ababa

20160607 ~ 20160609

케냐에서 에티오피아 육로이동은 이 홈피의 국경정보 카테고리에 간략히 올릴 수도 있지만 지난 3년의 여행중에 가장 길고 피곤했던 구간이라 혹여 뒤를 이을 여행자가 겪게될 예기치 못할 상황에 대비해서 미리 예방주사를 놔드린다는 생각으로 이박삼일 간의 길씨의 행적을 왠갖 잡설과 함께 되짚어 봅니다.

지리하고 장구한 글이오니 이동정보만 필요한 님은 국경정보 카테고리에 간략하게 정리될 글을 기다리세요.

케냐에서 육로로 에티오피아를 가는 방법은 버스를 타고 모얄레로 가서 국경을 넘어야 한다. 케냐와 에티오피아의 국경도시는 모얄레라는 똑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나이로비에서 모얄레까지는 길씨가 머문 숙소 뉴케냐롯지 근처 Tom Mboya Street 거리의 투스키 마트 앞에서 버스를 타고 6킬로 정도 떨어진 Eastleigh 이스트리라는 곳으로 가야한다.


파란 사각형이 길씨가 머문 숙소 근처 오른쪽 빨간 사각형이 이스트리 거리

버스를 타기 하루 전 날에 미리 티켓을 사둘까하고 여행자들이 제일 많이 이용해온 모얄레 스타 버스 사무실을 찾아 갔다.


Eastleigh 2nd Avenue 와 10th Street의 교차점에 있다.

예전 정보에는 모얄레 가는 버스가 한두 개 회사 밖에 없다고 했는데 직접 가보니 스타버스 외에도 대여섯 군데의 모얄레행 버스가 이스트리 거리 곳곳에 있어 표를 사지 않고 시간과 가격만 확인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가격은 모두 2,500씰링으로 동일하고 출발 시간이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버스회사마다 다르다. 나이로비에서 모얄레까지 대략 12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다음날 오후 5시에 출발하는 모얄레 스타버스를 탔다. 버스 탈 때 트렁크에 들어갈 승객들의 짐을 푸대자루로 덮어서 넣는데 100씰링을 요구해서 남은 동전 다 모아서 줘버렸다. 버스는 한줄에 2 X 3 좌석이고 오후 다섯 시에 정시에 출발했는데 심한 교통체증으로 나이로비를 시내을 벗어나는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나이로비에서 모얄레 국경까지의 도로는 최근에 거의 포장이 되어 들은만큼 험한 구간은 아니었다.

국경까지 가는 길은 몇 년 전보다 훨씬 좋아졌지만 2년전 남미에서 만난 여행동생이 에티오피아쪽 모얄레국경에서 겪은 얘기가 떠올랐다.
여행을 하다보면 믿기 어려운 여행자 전설과 여러 괴담을 듣게 된다. 예를 들어 인도를 다니다보면 20년 전의 괴담이 요즘은 주인공의 국적만 바뀐 채 전해지고 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 내용이 너무 처절해서 굳이 여기서 또 알려주기는 싫다. 이런 신빙성 없는 괴담의 경우 한쪽 귀로 듣고 흘려버리고 담아두지 않는 게 여행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남미 여행동생의 경우 일본커플과 같이 모얄레 국경마을을 걷다가 딱히 특별한 실랑이나 싸움도 없이 어느 정신나간 로칼이 휘두른 돌맹이에 그 커플의 남자가 뒤통수를 맞아 쓰러졌는데 정신을 못차려 엠블란스 불러 다같이 타고 가다 이번에 그 엠블란스 마저 전복되서 그 친구만 빼고 차에 탄 모두가 중경상을 입고 그남자는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직접 겪은 사람에게 들은 일이라 여느 괴담처럼 그냥 흘려 듣진 못하고 문제의 그 국경에 오게 되었다.

길씨는 삼 년전 한국을 떠날 때 어떤 최악의 경우를 겪더라도 모두 `자업자득 인과응보`라는 초강력 백신을 뼈속 깊이 맞고 왔다고 늘 다짐하고 다닌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행자에게 국경은 한시라도 긴장을 놓칠 수 없는 곳이다.

버스는 아침 7시에 케냐 모얄레 마을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제일 먼저 맞아주는 환전삐끼를 뒤로 하고 1키로쯤 떨어진 케냐 출입국 사무실로 배낭을 끌고 갔다.



출입국사무소는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만 연다고 한다. 문 열 때까지 기다리다 제일 먼저 출국도장을 받고 또 1키로 정도의 국경을 넘어 에티오피아 이미그레션으로 갔다. 역시 첫 번째 입국 도장을 받고 나오니 아니나 다를까 여기서도 환전삐끼가 제일 먼저 반겨준다.
산 산 산에는 산적들이 살고요 바다에는 해적들이 있고 국경에는 환전삐끼가 서식한다. 공식환율 1달라에 21비르인데 23까지 쳐준다고 설레발을 친다. 길씨 또한 돈에 약한 인간인지라 잠시 흔들리긴 했지만 탄자니아 국경에서 약간의 덤에 혹해서 환전사기를 당한 경험을 떠올리고 첫 번째로 보이는 은행으로 직행했다. 탄자니아 이후 암환전만 못해도 은행이나 정식 환전소에서만 환전하기로 마음 먹었다.

길씨는 장거리 버스를 타면 거의 먹지를 않는다. 12시간 이상을 버스로 이동하지만 작은 생라면 한봉지와 물 한 통이 먹거리의 전부다. 먹은 게 없으니 나오는 것이 없어 중간에 화장실에 갈 필요도 없다. 화장실 이용이 어려워 시작한 금식이 습관으로 굳어져 이제 배고픔을 참는 게 어렵지가 않다.

입국 도장도 받았고 환전한 후 현지 화폐를 보니 배고픔이 밀려왔다. 근처에 현지인들이 몇몇 테이블에 앉아 있는 빵집 까페에 들어 갔다. 무엇보다도 그 유명한 에티오피아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역시 명불허전이라 동네 빵집에서 파는 커피도 꽤 괜찮다. 허기를 면하고 친절한 주인에게 아디스아바바 가는 버스가 있냐니까 이미 새벽 6시에 떠났다고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에티오피아의 장거리버스는 밤버스는 없고 모두 이른 새벽에 출발한다.
앞에 언급한 모얄레에 벌어진 일도 있고 해서 여기서 하루 머물기는 싫고 아직 아침이라 최대한 갈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빵집에서 나와서 대로를 쭉 걷다가 오른쪽에 버스정류으로 보이는 곳에 여러 대의 버스가 정차해 있었다. 빵집 주인 말로는 아디스아바아까지의 중간 지점인 아와사 AWASA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고 했는데 그 버스도 이른 아침에 떠나가서 없고 무조건 가장 가까운 분기점인 야벨로 Yabelo까지는 가야 다음 도시로 이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일단 야벨로 가는 미니버스를 탔다.

아프리카의 미니버스는 만차가 되어야 출발한다. 큰 배낭을 차위에 싣는다고 따로 짐값 20비르를 달라고 해서 따지려다가 피곤하고 귀찮기도 하고 에티오피아 첫 도시 모얄레부터 첫 번째 실랑이를 시작하기 싫어서 그냥 줘버렸다. 버스비는 다른 로칼승객과 똑같이 80비르를 냈다. 만차가 되기까지 삼십 분이상 기다리는 동안 차장인 지 버스관리인인 지 시시껄렁한 농담을 길씨에게 마구 해댄다. 에티오피아는 암하릭이라는 자체 언어와 문자가 있지만 영어와 아랍어가 공용이어서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영어로 가능하다. 차이니즈라고 부르는 건 기본이고 슬슬 농도를 더하더니 코리아라고 하니까 얼마전에 아디스아바바에 한국대통령이 다녀가서 그런지 한국사람 부자라고 안경 남는 게 있으면 달라고 한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면 돈달라고 하는 소리는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지만 돗수도 안맞는 안경을 달라는 건 또 처음이다. 이럴 땐 못알아 듣는 척 캐무시하는 게 최선이다. 밤새 버스를 타느라 피곤하기도 하고 버스 뒷자석에서 고개를 숙이고 자는 척하니까 이제 지네들 말로 길씨를 안주삼아 농거리를 하면서 웃고 난리다.

여행을 오래하다보면 처음 듣는 언어를 대충은 알아듣는 신기한 능력이 생긴다.
언어 얘기가 나온 김에 좀 더하자면 영어를 못해도 여행은 할 수 있다. 오히려 그때가 언어로 인한 스트레스를 덜 받았다. 십이 년 전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영어는 딱 두 문장 뿐이었다.
How much? 와 Where is bus station?
이게 다였지만 이집트에서 남아공까지 영어를 공용으로 쓰는 동아프리카 여행을 마쳤다. 나머지 정보는 밤새 영문 론리플래닛을 번역해서 남들이 뭐라하든 책에 적힌 길대로만 다녔다.
그러니 각종 삐끼들이 사기를 치고 싶어도 알아듣지를 못하니 지들끼리 한참 영어로 치팅을 하다가 제풀에 지쳐 길씨 주변에서 사라졌다. 남아공이 가까워 올수록 점점 영어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그때부터 어느 놈이 사기나 치지 않을까하는 스트레스 또한 생겨 났다. 여행중에 사기를 당한 친구들을 보면 영어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할 때가 많다. 영어가 꽤 능숙한 여행자라도 귀찮은 삐끼들의 접근에 짐짓 영어를 못 알아듣는 척하며 '노 잉글리쉬` 나 '아이 칸트 스피커 잉글랜드`라고 종종 해줄 때가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뭘 알아들어야 사기라도 당하지.
결론은 영어를 못해도 여행은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역시 영어는 기본이라 잘해야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이 들어서 영어를 공부해서 그런지 어느정도 선에서 더이상 진도가 안나간다. 언어적 감수성이 싱싱할 때 많이들 공부해보시라.

뭔 얘기를 하다 여기까지 왔는 지, 버스 안에서 로칼들의 놀리감이 된 얘기부터 다시 시작한다. 케냐 나이로비 숙소인 뉴케냐롯지에 있을 때 에티오피아에서 넘어온 한국 일본 여행자들을 많이 만났다. 십이 년 전 동아프리카 여행 때 비자문제로 수단은 건너 뛰고 에티오피아는 공항만 찍고 이집트에서 케냐로 비행기를 타고 들어왔다. 사실상 에티오피아는 첫 여행지라 방금 에티오피아에서 넘어온 여행자에게 많은 정보를 얻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중 열에 아홉은 에티오피아 대해 좋지 못한 경험을 하고 왔고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베드버그 배드피플이라고 했다. 유난히 길씨가 만난 한국여행자는 뭐라도 하나 털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스마트폰을 소매치기 당한 어느 여행자는 에티오피아에서는 이상하게 영어를 빈정이 상하게 말한다고 했는데 모얄레 미니버스안에서 길씨를 놀려댈 때 그 느낌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었다. 길씨 옆자리에 에티오피아 아가씨가 앉았는데 영어로 이 여자 어떠냐고 그래서 반응하지 않고 캐무시하고 있으니 또 지들끼리 지들말로 약간의 영어를 섞어 얘기하는데 우리말처럼 들린다. 돈많은 한국 남자한테 시집가서 부자되라는 그런 말인듯한데 옆에 앉은 에티여자도 싫지 않은 지 같이 웃고 떠든다. 따지고보면 길씨에겐 고마운 말이지만 여행자를 돈으로만 보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까워 한 마디 했다.
I want to meet good people in Ethiopia. Good people don`t ask me anything.
라고 한 마디 던졌는데 여전히 그말을 이어 지들끼리 웃고 떠든다. 잠이나 더 잘걸하고 말을 뱉은 후 바로 후회했다.
역시 이럴 땐 캐무시가 정답이었어.
그렇게 시간은 가고 버스는 출발하는데 마지막으로 동양아가씨 한 명이 배낭을 메고 버스에 탔다. 혼자 여행하는 일본 배낭족이다. 버스안은 다시 새로 등장한 타칭 차이니즈에게 무게중심이 이동되고 그때서야 길씨도 그들의 이야기 소재에서 벗어나 쉴 수가 있었다.

이왕 이야기가 계속 삼천포로 빠지는 김에 차이니즈 얘기도 해볼까한다.
`동양인은 다 차이니즈이다`
분명 옳은 명제가 아닌데 중남미나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동양인은 거의 차이니즈라고 불린다. 남미에는 에스파뇰로 치노라고 하고 영어권에는 차이니즈, 칭창총 등 가지가지 애칭(?)이 다양하게 있다. 처음 세계여행을 했을 때는 차이니즈가 아니라 코리아라고 일일히 답하고 친절하게 한국의 위치까지 설명해주곤 했었다. 그러다 남미를 여행하면서 치노라고 하는 말이 동양인을 비하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인과 인도인은 세계 어디를 가도 차이나타운과 리틀인디아를 만들어 살고 있다. 특히 중국사람은 이민 초창기에 엄청난 고생을 하며 밑바닥에서 힘들고 어렵게 살았는데 그 때문인지 차이니즈는 동양인을 무시할 때 쓰는 대명사가 되버렸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옛날의 중국이 아니다. 경제 규모로 보면 미국과 맞짱 뜨는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로 발전했는데도 여전히 그런 의미로 부르는 자들을 보면 도대체 너희는 얼마나 대단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 지 반문하고 싶다. 사실 한국에도 중국인들을 비하하는 `짱`이나 `뗏`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있다. 이런 말을 상용하는 자들은 상대방의 대답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러니 아무리 차이니즈가 아니라 코리아라고 해도 쇠귀에 경읽기가 된다.

중미 엘살바르도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그날은 한국여행자랑 같이 길을 걷고 있었는데 동네 엉아로 보이는 한 명이 치노라 부르면 낄낄 댄다. 같이 가던 친구가, 그 친구도 여행경력이 꽤나 됐는데, 하필은 그날은 참지 못하고 치노가 아니라 코리아노라고 약간의 언성을 높였다. 그순간 어디서 나타났는 지 주변에 있던 동네 양아치들이 다같이 일어났다. 알고보니 처음 치노라고 부른 놈은 술에 쩌려 있었고 주변 놈들은 약을 했는지 상태가 메롱이었다. 똥개도 자기동네에서는 80프로 먹어준다더니...
순간 위험을 감지하고 지나가는 버스를 언능 올라탔는데 그 중 네 명이 같은 버스에 따라왔다. 다행히 썰전과 가벼운 신체접촉으로 끝나긴 했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하다.
엘살바르도는 세계에서 살인율 순위로 항상 탑5에 들어가는 도시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그들이 총이나 칼을 가졌으면... 생각하기도 싫다.

정답은 캐무시. (특정동물을 비하하기 싫어서 무시앞에 캐를 붙였다)
그들이 차이니즈라고 부를 때는 친절히 코리아라고 가르쳐 달라고 부른 게 아니다.
단지 그들이 그렇게 부르고 싶어서 부른 것인데 거기다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요 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다행히 남미에서는 예전보다 치노라고 부르는 소리를 훨씬 적게 들었다.

하나 더, 그럼 진짜 중국인들은 치노라고 부르면 어떤 느낌과 반응을 가지는 지 궁금했다. 중남미에는 중국인 배낭여행자가 거의 없어서 남미에서 현지화 된 중국인에게 넌즈시 물어봤는데 자기를 치노라 부를 땐 비하해서 하는 건지 정말 중국인 친구라서 부른 건 지 느낄 수 있고 왠만하면 좋은 쪽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하기야 치노를 치노라고 부른는데 틀렸다고 할 수 없고 아무튼 그들의 대국적인 마인드가 새삼 부러웠다.

그러나 다시 찾은 아프리카에서 그놈의 차이니즈란 소리가 남미보다 훨씬 많이 들렸다.
그토록 내공을 닦아 캐무시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한 번씩은 심하게 귀에 거슬릴 때가 있다. 아프리카인들에게 동양인을 무시하는 역차별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제법 많이 있다. 같은 유색인종이고 그들 또한 피부색을 이유로 백인들에게 엄청나게 당하고 살았는데 아직도 백인들과 동양인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아프리카 사람들이 있다. 백인들에겐 여전히 깍듯하고 제일 만만한 동양인을 통칭해서 차이니즈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실 역차별이라고 쓴 것도 아프리카인에 대한 편견이 들어간 말이다. 가끔 차이니즈란 소리를 듣고 필요이상의 흥분을 하게 될 때는 그들이 백인들에게 무시당한 흑인이라서가 아닌 지 자문해 보시길.

다시 진도를 나가면

미니버스는 Yabelo 야벨로 분기점까지만 갔다. 승객들은 다 내리고 일본배낭족과 계속 얘기를 나누던 에티청년이 너무도 친절하게도 앞으로의 진로를 알려주었다.
야벨로에서도 아디스까지 가는 버스가 있는데 다음날 새벽에 출발한다. 보통 시간이 많은 여행자라면 이 분기점에서 에티오피아 원주민을 보러 Konso 콘소방향으로 간다. 일본여행자는 친절한 에티청년의 도움을 받아 미니버스를 타고 근처 콘소가는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길씨는 아디스아바바에서 수단비자를 받아야해서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아 아디스아바바를 향해 계속 가기로 했다.
일본배낭족을 바래다준 에티청년이 이번엔 길씨한테로 다가와서 아디스아바바까지 가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한다. 이 친구는 또 왜 일케 친절한 거야? 한편으로 과잉친절을 경계하면서 버스 옆에 앉았던 에티처자랑 셋이서 다음 도시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국경에서 부터 파란 색 영문 글자로 쓰인 곳이 버스를 갈아탔던 곳이다.

야벨라 분기점에서 다시 미니버스(차비 35비르)를 타고 Hagere Maryam의 버스터미날까지 가서 내렸다. 버스위의 짐을 내려주는데 팁을 달래서 큰 배낭을 건네받은 후 뒤도 안돌아보고 다음 버스를 탔다. 마침 터미날에 Dilla 딜라가는 대형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이번 여행의 가장 힘든 구간이 시작되었다.


Hagere Maryam에서 Dilla 까지 4시간 정도 흙먼지 구간

버스 좌석이 좁고 길이 험해서 힘든 것보다는 비포장도로를 4시간여 달리는데 흙먼지가 너무 날려서 버스안인데도 불구하고 숨쉬기 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그 다음날 목이 너무 아파 결국 약을 먹어야 했다. 이 구간을 버스를 타고 지나는 여행자는 필히 마스크나 마후라를 준비해야 한다.

버스가 Dilla 딜라에 도착했을 때는 해는 이미 저물어 7시가 넘었다. 해가 지면 더이상 장거리버스는 달리지 않는다.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 새벽에 아디스아바바까지 가는 버스를 타야한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생면부지의 처음온 도시에서 동네 꼬마들이 길씨 하나를 두고 둘러싼다. 옛날 아프리카 여행할 때도 버스에서 내리면 동네꼬마들에 둘러 싸였지만 그때는 처음보는 동양인이 신기한듯 순진한 눈빛으로 구경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가로등 하나 없는 밤거리라서 그런지 차이니즈하면서 득달같이 달라드는 꼬마들이 마치 먹이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보였다. 길씨를 잡아끌고 동네 숙소로 데려가 약간의 팁이라도 받을려고 큰소리로 서로 경쟁을 하면 지들끼리 난리부루스를 춘다.
이때 국경부터 같이 버스를 타고온 에티청년과 처자가 나타나서 길씨를 꼬마들로 부터 떼어내고 너무나 고맙게도 근처 저렴한 로칼숙소(일박 80비르)를 찾아내 데려갔다. 그 와중에 어두운 밤거리에서 무거운 배낭을 끌고가다 도랑에 빠져 왼발목을 삐었다.
숙소는 물도 안나오고 달랑 침대 하나만 있었지만 어차피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에 아디스아바바까지 가는 버스를 타야해서 눈만 붙이는데는 큰 문제는 없었다.

에티청년과 처자는 길씨를 안전하게 숙소까지 안내해주고 홀연히 각자 갈 길을 갔다. 숙소까지 오느라 다리도 다치고 정신이 없어 이름도 못 물어보고 제대로 감사의 표현도 한 번 못했다. 뭐 하나라도 뜯어가려는 삐기들한테 치를 떨며 당장 이 넘의 나라를 떠나야지 하다가도 이런 선인들을 만나면 그래 이맛에 여행을 하는거야 하고 계속 다니게 된다.
그후로도 길씨에게 에티오피아는 묘하게 이런 선인과 악인이 공존하는 그런 나라였다.

다음날 새벽 4시에 깨서 숙소 앞 버스 정류장을 가니 터미날 문을 열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었다. 다섯 시가 넘어 터미날이 열리고 아디스아바바 가는 대형버스(차비 110비르)를 탔다.
버스는 날이 새고도 승객을 다 채운후 6시반쯤에 출발했다. 다행히 여기서부터는 포장도로여서 길씨를 괴롭히던 흙먼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의 일반적인 대형버스 3 X 2 좌석


중간에 도로가 식당에 버스를 세우면 내려서 점심도 먹고 먹거리를 파는 아이들


하나라도 더 팔아보려고 버스를 쫓아 달리는 아이


심지어 생선을 파는 사람과 사는 승객도 있었다.


한 번씩 이런 도로가에 차를 멈추고 검문을 한다.

다시 버스는 달려가다 아디스아바바 시내중심을 15키로 앞두고 버스가 퍼졌다. 파이샤라고 부르는 시내중심을 찾아가야 미리 보아둔 숙소를 갈 수 있다. 차는 한 시간을 기다려도 고치지를 못하고 있고 지나가는 택시는 얼마되지도 않는 거리를 말도 안되는 가격을 제시한다. 그래도 다행히 버스를 고쳐 시내중심에서 좀 떨어진 장거리버스 터미날에 드디어 도착했다.

시내에 진입하면서 고가도로 위에 전철이 다니는 게 보인다.


아디스아바바에는 경전철이 있다. 최근 몇 년전에 중국에서 만들어 준거라 아직도 운전석에 중국기사가 썬글라스를 끼고 현지기사를 가르치고 있다.


위의 파란색 라인의 Autobus Tera역이 장거리 버스 터미날 옆에 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게 경전철과 토모카커피 그리고 국립박물관이었다.
이 경전철 덕분에 시내 여러 곳을 단돈 2비르에 다닐 수 있었다.


파란색 종착역 Menilik 2 Square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파이샤(시내중심광장)가 나온다.

마침내 2박3일간의 기나긴 여정을 끝내고 숙소에 안착했다.


# 아디스아바바 숙소정보 #

배낭족들이 주로 찾는 파이샤 근처의 숙소



빨간 숫자

1번은 Minilik Light Train Station 미니릭 경전철역
2번은 TaituHotel 타이투호텔 화장실 없는 싱글룸 일박 200비르 와이파이 유료
3번은 Baro Hotel 바로호텔 화장실 딸린 싱글룸 일박 230비르 와이파이 무료
4번은 Wutuma Hotel우투마호텔 화장실 딸린 싱글룸 일박 260 와이파이 무료
5번은 Tomoca Cafe 토모카까페 에티오피아 커피의 진수를 맛볼 수 있고 살 수도 있다.


# 환율 #

2016년 6월 현재 환율
1달라 = 22비르
ATM이 잘되어 있어 환전보다 주로 현금인출을 했다.


2016년 5월 26일 목요일

배낭여행자 숙소에 대한 불편한 진실

# 배낭여행자 숙소에 대한 불편한 진실 #

남아프리카에서 부터 이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포스팅한 지가 반 년이 훨씬 넘었네요. 처음 여행을 시작하고 나만의 인터넷 계정에 구글블로그를 입혀 글과 사진을 올릴 때는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창고 정도로 생각해서 특별난 글 없이 사진 위주로 지난 여행을 정리했습니다.

그러다 아프리카로 넘어 오면서 제대로 블로그를 만들어 볼까하는 생각으로 현재까지는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거의 실시간 여행기를 어려운 인터넷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올리고 있습니다.

애초에 네이버나 한국의 유명 사이트에 블로그를 만들지 않고 구글에 블로그를 만든 이유는 `적들에게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고 하신 이순신 장군의 유훈을 받들어 딱히 누구에게 알리지도 않고 알리고 싶은 마음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블로그를 방문하는 이들도 많지 않고 덕분에 있는 듯 없는 듯한 곳에서 아무 눈치 안보고 맞춤법에 구애받지 않고 아재개그 비슷한 실없는 소리를 써제끼며 부담없이 글을 써왔습니다.
글의 전개 방식 마저 이중자아를 가진 일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스스로를 길씨라 칭하며 자기자신에 말하는 일기처럼 소심하지만 솔직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런 지도 이제 어언 일 년이 되어가다보니 드물지만 아프리카의 여행정보를 찾는 이들에게 발각(?)되어 변변찮은 정보지만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었나봅니다.

현재 저는 이 홈페이지에 있는 소제목에 보이는 `올드보이를 위한 배낭여행 안내서`라는 여행 전반에 관한 책을 따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블로그에는 실시간 여행기 위주로 그러니까 장기 배낭여행자에게 당장 필요한 숙소와 이동방법, 국경통과 및 비자 환율 정보 등을 실시간으로 꾸준히 포스팅하고 이글 제목의 `배낭여행자 숙소의 불편한 진실`과 같은 개인적인 견해는 책으로 소개될 `올드보이를 위한 배낭여행 안내서`중의 각론편에 소개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이미 제가 올린 정보를 보고 숙소를 찾아가는 님들이 있고 그 숙소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호불호가 분명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여행자숙소에 관한 제 생각을 미리 밝혀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여기 제가 올리는 숙소에 대한 것은 지극히 저의 개인적인 생각임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하겠습니다.

장기여행자에게 숙소는 두말할 것도 없이 저렴하고 가성비가 뛰어난 곳이 최우선 고려사항이 됩니다.
장기여행이라 함은 우리 실정에 비추어 귀국하지 않고 3개월 이상의 여행이 계속되면 장기 여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요즘은 일 년이상 여행하는 사람도 많고 심지어 여행이 생활이 되어버린 제 경우엔 생활여행자란 말이 새롭지가 않습니다.

장기배낭여행자의 숙소라고 꼭 집어 말하는 이유는 단기 여행, 예를 들어 패키지나 짧은 휴가여행의 경우 투어에서 기본적으로 숙소가 제공되기도 하고 굳이 가격만 싼 숙소를 찾아서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는 게 안타깝게 보여서 입니다. 특히 여행에서 시간과 돈은 반비례합니다. 여행지에서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으면 정보를 제대로 찾을 수 없어 그만큼 시행착오에 대한 금전적인 비용이 많이 들고 반대로 여유가 있으면 구체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가성비 높은 숙소를 구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 장기 배낭 여행자는 어떤 숙소를 선호할까요?

다른 장기여행자들의 숙소에 대한 호불호를 일반화시키기 전에 그중 하나인 저의 생각을 위주로 이 글을 적어나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주지시켜 드립니다.

저의 경우 가격적인 면에서는 미화 10달라 이하의 숙소를 제일 먼저 찾아봅니다. 보통의 경우 이 가격대의 숙소는 싱글룸이 아닌 여러명이 공유하는 도미토리가 대부분입니다. 물가가 비싼 유럽이나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비록 도미토리라고 해도 이 가격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러나 중남미 아프리카의 호스텔과 현지인이 주로 이용하는 숙소를 잘 찾아보면 의외로 십달라이하의 욕실 달린 싱글룸이 종종 있습니다.
장기여행자라고 해도 가격대 높은 호텔을 갈수도 있습니다만 여행 하루 이틀하는 것이 아니라서 전체적인 한 달 평균생활비를 유지하려면 저렴한 숙소비용이 저에게는 최우선입니다.

그런 숙소가 몇 개 있다면 그 다음 고려 사항은 주방 사용이 가능한 지 보고 그리고 인터넷 와이파이가 되는 지 이런 순으로 비교합니다.
요즘은 체류형 여행이 되다보니 여행지에 상관없이 위의 조건들이 딱 맞아지는 숙소가 나타나면 곧바로 일주일 이상 장기모드로 진입합니다.

모든 숙소가 이런 착한 가격에 주방에 와이파이에 거기다 주변환경 및 접근성까지 다 좋다면야 구구절절 이 글을 이어나갈 이유가 없겠지요.

바로 여기에 숙소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중남미나 아프리카까지 지금까지 다녀본 대부분의 저렴한 숙소는 현지인도 위험하다고 하는 구시가지나 찾아가기 힘든 외지나 교통이 편한 버스터미날 근처에 있더라도 밤이나 새벽에는 다니기 힘든 우범지역에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도난이라도 당해 경찰서를 찾아가면 왜 이런 위험한 곳에서 자냐고 오히려 되묻곤 합니다. 현지경찰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편이라 생각하고 대사관에 찾아가면 거기서도 왜 그렇게 위험한 곳에 숙소를 정했냐고 하는데 이런 말은 전혀 위안이 안됩니다. 가난한 배낭여행자에게 이런 말은 성추행을 당한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분에게 그렇게 입고 다니니까 당한거지라고 하는 거랑 같은 말입니다. 그래도 요즘은 한국대사관을 찾아가면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친절하고 자국민에게 잘해주려고 노력을 하긴 합니다.

가끔 좋은 환경에 호텔급 시설을 갖춘 데가 있기도 합니다만 보통 그런 곳은 주방을 사용하지 못하고 자체 레스토랑에서 밥을 사먹어야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호스텔 주변에 싼 식당이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숙소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만 먹게되는데 어떤 곳은 한끼 식비가 하루 숙박비보다 더 비싼 경우도 있습니다.

다행히 주방사용이 가능하고 취향대로 음식을 해먹을 수 있어 식비지출을 줄이더라도 이번엔 숙소에서 제공하는 투어를 은근히 강요합니다. 물론 내공이 강한 여행자는 투어를 안하고 버틸 수 있습니다만 어쨌든 눈치가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방값은 싸게 제공하고 나머지는 식당운영과 투어소개로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인 것입니다.
문제는 숙박비가 아닌 엉뚱한 곳에서 폭리를 취하는 것이지 적당한 가격의 음식과 투어를 제공하는 곳도 있으니 이런 류의 숙소가 다 그렇다는 말이 아닙니다.

반면에 착한 가격에 주방사용, 와이파이 조건을 다 갖추고도 투어 같은 것을 강요하지 않고 오로지 숙박비 만으로 운영하는 곳이 있습니다.
대부분 이런 숙소는 규모가 작고 오래된 곳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 저렴한 도미토리 가격만으로 숙소를 운영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물가가 싼 나라라고 할 지라도 기본적으로 전기세 수도세 인터넷관리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런 숙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관심을 두고보면 하루종일 숙소에서 허드레 일을 하면서 잠은 소파나 바닥에 매트 한 장 깔고 자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의 무임금에 가까운 비용으로 숙소운영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들 중에서 게스트의 물건을 탐하고 어느날 숙소에서 사라지는 직원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힘없고 나이들어서 숙소에 주는 밥과 잠자리로 연명하며 하루종일 잡일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항상 싼 숙소를 찾아가는 내가 이 집 주인과 같이 이런 사람들을 착취해서 여행을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필요이상의 생각도 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하루 10달라이하의 숙소에서는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다. 꼬우면 비싼 데로 옮겨라. 거기서도 맘에 안들면 따져라. 일케 무지막지한 결론을 지었습니다.


You get what you pay.

뿌린만큼 거두리라, 만고의 진리다.


비용이 들더라도 괜찮은 호텔같은 숙소를 찾는 분은 제 블로그의 숙소 정보는 더이상 볼 필요가 없습니다.
유럽권을 제외하고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를 통틀어서 20달라 이상의 숙소에서 자본 적도 없고 이런 식의 배낭여행에 인이 박힌 저로서는 누가 공짜로 주더라도 아마 조용하고 깨끗한 곳에서 잠을 이루기 힘들 듯합니다.
적지않은 나이에 굳이 이런 최저가의 숙소에 주로 머무는 이유는 가장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면 그 다음이 수월하기 때문이고 아직은 제 스스로의 몸으로 `가난한 여행`을 즐기며 다양한 여행자와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여행`이란 우스개 소리로 `방값아껴서 술 사먹는 형태`라고 어떤 글에서 썼지만
제가 지향하는 진정한 `가난한 여행`의 의미는 비록 서푼짜리 잠자리에서 빈대와 벼룩을 벗삼아 잘지라도 나의 자존감을 지키는 이 길씨다운 나만의 여행을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이런 저렴한 숙소에 억지로라도 찾아가야 제대로 배낭여행을 즐길 줄 아는 여행자들과 진솔한 현지인을 만날 수 있으니 이 또한 `가난한 여행`의 최고의 즐거움이 아니겠는지요?


2016년 5월 8일 일요일

진자 캄팔라 아프리카의 적도 Jinja Kampala Equator in Uganda

20160408~20160423

십이 년 전 진자의 추억을 찾아서

케냐 Nairobi 나이로비에서 우간다 Kampala 캄팔라까지 가는 버스를 오후 5시에 타서 새벽 두 시쯤 국경에서 간단한 이미그레션을 마치고 먼동이 트는 아침에 Jinja 진자시 외곽 도로에 내렸다. 해가 뜨기 전에 버스안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미리 차장에게 말하지 않으면 버스는 진자를 지나쳐 캄팔라까지 가버릴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된다.



비교적 럭셔리하게 보이는 BUSCAR 버스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까지는 2,100씰링이고 진자에 내려면 2,000씰링 별 차이가 없는 가격이다. 제일 싼 버스는 Dream Line 드림라인 버스로 캄팔라나 진자나 같은 1,800씰링.
버스회사에 따라 매표소와 타는 곳이 다를 수도 있으니 표를 살 때 필히 확인해야 한다. 대부분의 버스사무소는 한국과 일본 배낭족들이 많이 찾는 숙소 New Kenya Lodge 뉴케냐롯지 근처 Duruma Road와 Accra Road에 몰려 있다.

진자시 외곽 진자로드에 내려서 래프팅으로 유명한 Explorers Backpackers 익스플로러 호스텔을 찾아 2키로 정도를 배낭을 메고 아침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호스텔의 도미토리 가격이 알고 있던 정보와 달리 일박에 12달라로 생각보다 비싸고 애초부터 래프팅에 관심이 없었던 길씨는 다시 저렴한 로칼숙소가 찾아 진자시내를 향해 2키로를 더 걸어 갔다.


동네 대문 앞에 발랄하게 보이는 발가락 아프리카가 새겨진 문패



시내로 진입하니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보이고


아프리카 답게 상점이나 호텔 앞에 코끼리 동상이 많다.


12년전에 그녀와 함께 머물었던 숙소를 찾아 봤는데


길은 같은데


경찰서도 그대로이고


오래된 우체통까지 발견했지만

도저히 옛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시내에서 제일 싼 로칼 숙소에 짐을 풀고
허기진 배를 채우러 먹거리를 찾아 나섰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발견한 식당


나름 부페식


가재미 조림 같은 것을 골라 먹었는데 우리맛이랑 너무 비슷하고 맛이 있었다.
빅토리아 호수에서 잡아온 고기라고 한다.

진자시는 Lake Victoria 빅토리아 호수를 끼고 Nile River 백 나일강의 원류가 있는 곳이다.
청 나일강의 원류인 에티오피아의 Lake Tana 타나호수의 강물과 수단에서 만나서 이집트 나일강에 이른다고 한다.


시내 중심 도로에서 2키로 정도 떨어져 있는 호숫가 마을


멀리 정박한 배들이 보이고


마을 아가들이 반겨준다.


이번 두 번째 세계여행 동안 예전 여행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남겼던 곳이나 인상 깊었던 도시를 일부러 찾아가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안타깝지만 아직까지는 예전 기억보다 더 좋았던 곳은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추억의 장소를 다시 찾기가 두려워 졌다.

진자 또한 마음씨 좋은 사람들과 깨끗한 거리로 기억하고 있던 그때의 시골도시는 아니었다. 중심가는 은행이며 상가와 번듯한 건물이 들어서 있고 시장통이나 뒷골목은 쓰레기가 난무했다. 밤에는 동남아 여행지에서나 있을 법한 길거리 좌판에서 술과 고기를 먹고 마시며 싸구려 숙소 뒷편에는 밤을 달리는 나이트클럽의 굉음이 잠을 설치게 했다.

특별히 래프팅을 할 생각이 없다면 시내에 오래 머물 이유가 없고 정 시골마을이 그리운 이는 진자시에서 좀 더 벗어난 곳을 발품을 팔아 찾아가면 그나마 호숫가 마을의 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다시 짐을 싸서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 갔다.


이것이 올드택시 파크, 광장을 미니버스가 가득 메우고 있다.
여기 아니고도 뉴택시파크와 우간다 전역으로 다니는 이런 미니버스 정류소가 캄팔라 시내 여러군데 있다. 이동시에는 항상 어느 버스 정류장인지를 확인해야한다.


올드택시 파크 위로 좀 올라가면 상가거리가 나타나며 도로를 가득 메우는 인파에 둘러 싸인다. 초행의 여행자는 여기서부터 항상 긴장감을 유지해야한다.


시내중심으로 들어가니 예전에 못보던 대형 시내 버스들이 보이고


다행히 그녀와 함께 공연을 보았던 우간다 국립극장은 그대로 있었다.

보다보다(오토바이)를 타고 최근에 부킹사이트에서 소개된 Ewaka Hostel을 찾아갔다.


간판이 따로 없고 벽에 Ewaka라고 적힌 가정집을 개조한 호스텔


르완다 여행을 준비하고 다시 돌아와 나이로비로 돌아갈 때까지 기거한 침대


강아지 두 마리와 지붕위의 새 세 마리
10달라 이하의 착한 가격(일박 25,000씰링)에 와이파이와 무엇보다도 도구가 잘 갖춰진 주방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다음날 시내 탐방
아프리카의 여느 나라처럼 우간다 역시 빈부의 차이가 크다.


이런 대형마트에


럭셔리한 쇼핑몰


시내에 장비만 있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골프공원까지 있다.


빨간 골프공은 진짜 공이 아니다. 커다란 돌덩이을 깎아서 색칠한 것이니 절대 차지 마시라.

그리고 며칠 후 르완다로 갔다.

르완다 여행을 끝내고 다시 캄팔라에 돌아왔는데 꼭 가고 싶은 곳이 한군데 있었다.


올드택시 파크가 아닌 뉴택시 파크로 가야 한다.


버스 운전수 창앞에 행선지가 붙어 있다. 
제일 아래 자세히 보면 EQUATOR(까지 7,000씰링)라고 적혀 있다.


캄팔라 마사카 도로의 중간쯤, 이 도로가 르완다까지 이어진다.


위 지도의 지점에 내려야한다.


여기가 어딜까요? 사진에 보이는 노란선이 바로 지구별 중심을 지나는 선이다.


양쪽의 동그라미를 노란선이 관통해서 도로를 비스듬히 지나간다.


스마트폰 오프라인맵의 GPS로 측정된 위도, 0에 가깝다.



인증샷 한 방 찍고 나며 주변에 기념품 파는 상점 몇 개 뿐이고 도로변이라 따로 볼게 없어 다시 캄팔라로 지나가는 미니버스를 잡아타고 돌아왔다.


2년 전 남미 여행에서의 적도 사진과 비교해보면


남미 에콰도르 적도 기념관 및 공원


규모가 훨씬 크다. 하긴 이 나라는 이름마저 Ecuador 우리말로 적도라 부른다.

그리고 우간다에서 추천할 만한 곳이라면 르완다 근처의 Lake Bunyonyi 부뇨니호수 정도가 있는데 무엇이 두려웠던지 길씨는 더 이상 추억의 장소를 찾지 않았다.


추억은 간직할수록 아름답고 소중해진다는 것을......



# 숙소와 이동 #

나이로비 Nairobi


위의 지도 속 파란색 사각형이 나이로비 최대 중심가이고
오른쪽 빨간색 사각형이 싼 숙소와 버스사무실이 밀집한 곳이다.  확대하면


왼쪽 3개의 빨간 사각형은 배낭여행자가 많이 이용하는 10달라 이하의 저렴한 숙소이고
오른쪽 3개의 사각형이 우간다와 르완다까지 갈 수 있는 국제버스 사무실이다.
물론 이주변에 케냐 곳곳을 다니는 미니버스를 비롯한 수많은 이동수단이 있다.

진자시 Jinja


지도의 노란 선 캄팔라까지 이어지는 주도로에 버스가 내려준다.
빨간색 시내 중심까지 걸어갔다. 왼쪽 파란 사각형이 래프팅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확대한 지도 왼쪽 위 빨간 사각형이 숙소 Explorer Bacpackers
래프팅을 하고 싶으면 웹서핑을 해서 홈페이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레벨 6까지 있는 래프팅이 100 ~ 150달라까지 있다고 한다. 진자에는 래프팅하는 곳이 여러군데 있어 미리 연락하면 캄팔라에서 진자까지 무료픽업을 해준다고 한다.

오른쪽 빨간 사각형 두 개가 숙소
Clive Road 근처의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Classic Guesthosue가 일박에 25,000씰링 욕실달린 제일 싼 싱글룸이 있지만 실내가 너무 어둡고 숙소에 붙어 있는 나이트클럽에서 밤새도록 댄스음악을 틀어서 왠만한 인내심이 없는 사람은 잠들기 힘든 곳이다.
그위의 Kutch Road의 Bellevue Hotel이 비교적 조용한 곳인데 제일 싼 욕실없는 싱글룸이 30,000씰링이고 그 위 가격이 50,000씰링 부터 있다.

아래 왼쪽 파란사각형이 Source of the Nile 백 나일강의 원류라고 주장하는 곳이다.

진자에서 캄팔라가는 버스는 Clive Road나 시내 어디든 미니버스(우간다에는 택시라 부른다)를 발견하고 세워서 타면 된다. 가격은 5,000씰링을 냈고 진자까지 두 시간 좀 넘게 걸렸다.


캄팔라 Kampala



캄팔라 시내 빨간 사각형이 시내 중심이고 파란 사각형이 버스정류장이 모여 있는 곳이다.
오른쪽 빨간 동그라미가 Ewaka Hostel. 시내를 다닐 때 위의 파란선 Kira Road를 다니는 미니버스를 타고 다녔다. 시내까지 1,500씰링.


보다보다 Bodada(오토바이 5,000씰링)를 타고 위의 Ewaka Hostel을 가려면 Ntinda Road의 Ntinda Market을 말하고 Salim Bey Road를 따라 가야 된다.


시내 중심 국립극장 Nathional Theater 아래 파란 선 De Winton Road을 따라 이웃나라로 다니는 국제 버스매표소가 많이 있다. 그러나 버스타는 곳은 다른 장소에 있는 경우가 있으니 표를 살 때 꼭 확인하시라.
빨간 사각형이 시내에서는 제일 저렴한 New City Annex Hotel 이고 욕실없고 침대만 있는 조그만 싱글룸이 25,000씰링 부터 있는데 주말에는 방이 없었다.

* 숙소정보를 읽기 전에 아래 링크된 글을 한 번 읽어 주세요 *



2016년 5월 나라별 환율정보

미화 1달라 기준 = 100 케냐 씰링 = 3,300 우간다 씰링 = 780 르완다 프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