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2일 일요일

나이로비에서 아디스아바바까지 From Nairobi to Addis Ababa

20160607 ~ 20160609

케냐에서 에티오피아 육로이동은 이 홈피의 국경정보 카테고리에 간략히 올릴 수도 있지만 지난 3년의 여행중에 가장 길고 피곤했던 구간이라 혹여 뒤를 이을 여행자가 겪게될 예기치 못할 상황에 대비해서 미리 예방주사를 놔드린다는 생각으로 이박삼일 간의 길씨의 행적을 왠갖 잡설과 함께 되짚어 봅니다.

지리하고 장구한 글이오니 이동정보만 필요한 님은 국경정보 카테고리에 간략하게 정리될 글을 기다리세요.

케냐에서 육로로 에티오피아를 가는 방법은 버스를 타고 모얄레로 가서 국경을 넘어야 한다. 케냐와 에티오피아의 국경도시는 모얄레라는 똑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나이로비에서 모얄레까지는 길씨가 머문 숙소 뉴케냐롯지 근처 Tom Mboya Street 거리의 투스키 마트 앞에서 버스를 타고 6킬로 정도 떨어진 Eastleigh 이스트리라는 곳으로 가야한다.


파란 사각형이 길씨가 머문 숙소 근처 오른쪽 빨간 사각형이 이스트리 거리

버스를 타기 하루 전 날에 미리 티켓을 사둘까하고 여행자들이 제일 많이 이용해온 모얄레 스타 버스 사무실을 찾아 갔다.


Eastleigh 2nd Avenue 와 10th Street의 교차점에 있다.

예전 정보에는 모얄레 가는 버스가 한두 개 회사 밖에 없다고 했는데 직접 가보니 스타버스 외에도 대여섯 군데의 모얄레행 버스가 이스트리 거리 곳곳에 있어 표를 사지 않고 시간과 가격만 확인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가격은 모두 2,500씰링으로 동일하고 출발 시간이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버스회사마다 다르다. 나이로비에서 모얄레까지 대략 12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다음날 오후 5시에 출발하는 모얄레 스타버스를 탔다. 버스 탈 때 트렁크에 들어갈 승객들의 짐을 푸대자루로 덮어서 넣는데 100씰링을 요구해서 남은 동전 다 모아서 줘버렸다. 버스는 한줄에 2 X 3 좌석이고 오후 다섯 시에 정시에 출발했는데 심한 교통체증으로 나이로비를 시내을 벗어나는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나이로비에서 모얄레 국경까지의 도로는 최근에 거의 포장이 되어 들은만큼 험한 구간은 아니었다.

국경까지 가는 길은 몇 년 전보다 훨씬 좋아졌지만 2년전 남미에서 만난 여행동생이 에티오피아쪽 모얄레국경에서 겪은 얘기가 떠올랐다.
여행을 하다보면 믿기 어려운 여행자 전설과 여러 괴담을 듣게 된다. 예를 들어 인도를 다니다보면 20년 전의 괴담이 요즘은 주인공의 국적만 바뀐 채 전해지고 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그 내용이 너무 처절해서 굳이 여기서 또 알려주기는 싫다. 이런 신빙성 없는 괴담의 경우 한쪽 귀로 듣고 흘려버리고 담아두지 않는 게 여행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남미 여행동생의 경우 일본커플과 같이 모얄레 국경마을을 걷다가 딱히 특별한 실랑이나 싸움도 없이 어느 정신나간 로칼이 휘두른 돌맹이에 그 커플의 남자가 뒤통수를 맞아 쓰러졌는데 정신을 못차려 엠블란스 불러 다같이 타고 가다 이번에 그 엠블란스 마저 전복되서 그 친구만 빼고 차에 탄 모두가 중경상을 입고 그남자는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직접 겪은 사람에게 들은 일이라 여느 괴담처럼 그냥 흘려 듣진 못하고 문제의 그 국경에 오게 되었다.

길씨는 삼 년전 한국을 떠날 때 어떤 최악의 경우를 겪더라도 모두 `자업자득 인과응보`라는 초강력 백신을 뼈속 깊이 맞고 왔다고 늘 다짐하고 다닌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행자에게 국경은 한시라도 긴장을 놓칠 수 없는 곳이다.

버스는 아침 7시에 케냐 모얄레 마을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제일 먼저 맞아주는 환전삐끼를 뒤로 하고 1키로쯤 떨어진 케냐 출입국 사무실로 배낭을 끌고 갔다.



출입국사무소는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만 연다고 한다. 문 열 때까지 기다리다 제일 먼저 출국도장을 받고 또 1키로 정도의 국경을 넘어 에티오피아 이미그레션으로 갔다. 역시 첫 번째 입국 도장을 받고 나오니 아니나 다를까 여기서도 환전삐끼가 제일 먼저 반겨준다.
산 산 산에는 산적들이 살고요 바다에는 해적들이 있고 국경에는 환전삐끼가 서식한다. 공식환율 1달라에 21비르인데 23까지 쳐준다고 설레발을 친다. 길씨 또한 돈에 약한 인간인지라 잠시 흔들리긴 했지만 탄자니아 국경에서 약간의 덤에 혹해서 환전사기를 당한 경험을 떠올리고 첫 번째로 보이는 은행으로 직행했다. 탄자니아 이후 암환전만 못해도 은행이나 정식 환전소에서만 환전하기로 마음 먹었다.

길씨는 장거리 버스를 타면 거의 먹지를 않는다. 12시간 이상을 버스로 이동하지만 작은 생라면 한봉지와 물 한 통이 먹거리의 전부다. 먹은 게 없으니 나오는 것이 없어 중간에 화장실에 갈 필요도 없다. 화장실 이용이 어려워 시작한 금식이 습관으로 굳어져 이제 배고픔을 참는 게 어렵지가 않다.

입국 도장도 받았고 환전한 후 현지 화폐를 보니 배고픔이 밀려왔다. 근처에 현지인들이 몇몇 테이블에 앉아 있는 빵집 까페에 들어 갔다. 무엇보다도 그 유명한 에티오피아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역시 명불허전이라 동네 빵집에서 파는 커피도 꽤 괜찮다. 허기를 면하고 친절한 주인에게 아디스아바바 가는 버스가 있냐니까 이미 새벽 6시에 떠났다고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에티오피아의 장거리버스는 밤버스는 없고 모두 이른 새벽에 출발한다.
앞에 언급한 모얄레에 벌어진 일도 있고 해서 여기서 하루 머물기는 싫고 아직 아침이라 최대한 갈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빵집에서 나와서 대로를 쭉 걷다가 오른쪽에 버스정류으로 보이는 곳에 여러 대의 버스가 정차해 있었다. 빵집 주인 말로는 아디스아바아까지의 중간 지점인 아와사 AWASA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고 했는데 그 버스도 이른 아침에 떠나가서 없고 무조건 가장 가까운 분기점인 야벨로 Yabelo까지는 가야 다음 도시로 이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일단 야벨로 가는 미니버스를 탔다.

아프리카의 미니버스는 만차가 되어야 출발한다. 큰 배낭을 차위에 싣는다고 따로 짐값 20비르를 달라고 해서 따지려다가 피곤하고 귀찮기도 하고 에티오피아 첫 도시 모얄레부터 첫 번째 실랑이를 시작하기 싫어서 그냥 줘버렸다. 버스비는 다른 로칼승객과 똑같이 80비르를 냈다. 만차가 되기까지 삼십 분이상 기다리는 동안 차장인 지 버스관리인인 지 시시껄렁한 농담을 길씨에게 마구 해댄다. 에티오피아는 암하릭이라는 자체 언어와 문자가 있지만 영어와 아랍어가 공용이어서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영어로 가능하다. 차이니즈라고 부르는 건 기본이고 슬슬 농도를 더하더니 코리아라고 하니까 얼마전에 아디스아바바에 한국대통령이 다녀가서 그런지 한국사람 부자라고 안경 남는 게 있으면 달라고 한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면 돈달라고 하는 소리는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지만 돗수도 안맞는 안경을 달라는 건 또 처음이다. 이럴 땐 못알아 듣는 척 캐무시하는 게 최선이다. 밤새 버스를 타느라 피곤하기도 하고 버스 뒷자석에서 고개를 숙이고 자는 척하니까 이제 지네들 말로 길씨를 안주삼아 농거리를 하면서 웃고 난리다.

여행을 오래하다보면 처음 듣는 언어를 대충은 알아듣는 신기한 능력이 생긴다.
언어 얘기가 나온 김에 좀 더하자면 영어를 못해도 여행은 할 수 있다. 오히려 그때가 언어로 인한 스트레스를 덜 받았다. 십이 년 전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영어는 딱 두 문장 뿐이었다.
How much? 와 Where is bus station?
이게 다였지만 이집트에서 남아공까지 영어를 공용으로 쓰는 동아프리카 여행을 마쳤다. 나머지 정보는 밤새 영문 론리플래닛을 번역해서 남들이 뭐라하든 책에 적힌 길대로만 다녔다.
그러니 각종 삐끼들이 사기를 치고 싶어도 알아듣지를 못하니 지들끼리 한참 영어로 치팅을 하다가 제풀에 지쳐 길씨 주변에서 사라졌다. 남아공이 가까워 올수록 점점 영어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그때부터 어느 놈이 사기나 치지 않을까하는 스트레스 또한 생겨 났다. 여행중에 사기를 당한 친구들을 보면 영어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할 때가 많다. 영어가 꽤 능숙한 여행자라도 귀찮은 삐끼들의 접근에 짐짓 영어를 못 알아듣는 척하며 '노 잉글리쉬` 나 '아이 칸트 스피커 잉글랜드`라고 종종 해줄 때가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뭘 알아들어야 사기라도 당하지.
결론은 영어를 못해도 여행은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역시 영어는 기본이라 잘해야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이 들어서 영어를 공부해서 그런지 어느정도 선에서 더이상 진도가 안나간다. 언어적 감수성이 싱싱할 때 많이들 공부해보시라.

뭔 얘기를 하다 여기까지 왔는 지, 버스 안에서 로칼들의 놀리감이 된 얘기부터 다시 시작한다. 케냐 나이로비 숙소인 뉴케냐롯지에 있을 때 에티오피아에서 넘어온 한국 일본 여행자들을 많이 만났다. 십이 년 전 동아프리카 여행 때 비자문제로 수단은 건너 뛰고 에티오피아는 공항만 찍고 이집트에서 케냐로 비행기를 타고 들어왔다. 사실상 에티오피아는 첫 여행지라 방금 에티오피아에서 넘어온 여행자에게 많은 정보를 얻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중 열에 아홉은 에티오피아 대해 좋지 못한 경험을 하고 왔고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베드버그 배드피플이라고 했다. 유난히 길씨가 만난 한국여행자는 뭐라도 하나 털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스마트폰을 소매치기 당한 어느 여행자는 에티오피아에서는 이상하게 영어를 빈정이 상하게 말한다고 했는데 모얄레 미니버스안에서 길씨를 놀려댈 때 그 느낌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었다. 길씨 옆자리에 에티오피아 아가씨가 앉았는데 영어로 이 여자 어떠냐고 그래서 반응하지 않고 캐무시하고 있으니 또 지들끼리 지들말로 약간의 영어를 섞어 얘기하는데 우리말처럼 들린다. 돈많은 한국 남자한테 시집가서 부자되라는 그런 말인듯한데 옆에 앉은 에티여자도 싫지 않은 지 같이 웃고 떠든다. 따지고보면 길씨에겐 고마운 말이지만 여행자를 돈으로만 보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까워 한 마디 했다.
I want to meet good people in Ethiopia. Good people don`t ask me anything.
라고 한 마디 던졌는데 여전히 그말을 이어 지들끼리 웃고 떠든다. 잠이나 더 잘걸하고 말을 뱉은 후 바로 후회했다.
역시 이럴 땐 캐무시가 정답이었어.
그렇게 시간은 가고 버스는 출발하는데 마지막으로 동양아가씨 한 명이 배낭을 메고 버스에 탔다. 혼자 여행하는 일본 배낭족이다. 버스안은 다시 새로 등장한 타칭 차이니즈에게 무게중심이 이동되고 그때서야 길씨도 그들의 이야기 소재에서 벗어나 쉴 수가 있었다.

이왕 이야기가 계속 삼천포로 빠지는 김에 차이니즈 얘기도 해볼까한다.
`동양인은 다 차이니즈이다`
분명 옳은 명제가 아닌데 중남미나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동양인은 거의 차이니즈라고 불린다. 남미에는 에스파뇰로 치노라고 하고 영어권에는 차이니즈, 칭창총 등 가지가지 애칭(?)이 다양하게 있다. 처음 세계여행을 했을 때는 차이니즈가 아니라 코리아라고 일일히 답하고 친절하게 한국의 위치까지 설명해주곤 했었다. 그러다 남미를 여행하면서 치노라고 하는 말이 동양인을 비하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인과 인도인은 세계 어디를 가도 차이나타운과 리틀인디아를 만들어 살고 있다. 특히 중국사람은 이민 초창기에 엄청난 고생을 하며 밑바닥에서 힘들고 어렵게 살았는데 그 때문인지 차이니즈는 동양인을 무시할 때 쓰는 대명사가 되버렸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옛날의 중국이 아니다. 경제 규모로 보면 미국과 맞짱 뜨는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로 발전했는데도 여전히 그런 의미로 부르는 자들을 보면 도대체 너희는 얼마나 대단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 지 반문하고 싶다. 사실 한국에도 중국인들을 비하하는 `짱`이나 `뗏`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있다. 이런 말을 상용하는 자들은 상대방의 대답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러니 아무리 차이니즈가 아니라 코리아라고 해도 쇠귀에 경읽기가 된다.

중미 엘살바르도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그날은 한국여행자랑 같이 길을 걷고 있었는데 동네 엉아로 보이는 한 명이 치노라 부르면 낄낄 댄다. 같이 가던 친구가, 그 친구도 여행경력이 꽤나 됐는데, 하필은 그날은 참지 못하고 치노가 아니라 코리아노라고 약간의 언성을 높였다. 그순간 어디서 나타났는 지 주변에 있던 동네 양아치들이 다같이 일어났다. 알고보니 처음 치노라고 부른 놈은 술에 쩌려 있었고 주변 놈들은 약을 했는지 상태가 메롱이었다. 똥개도 자기동네에서는 80프로 먹어준다더니...
순간 위험을 감지하고 지나가는 버스를 언능 올라탔는데 그 중 네 명이 같은 버스에 따라왔다. 다행히 썰전과 가벼운 신체접촉으로 끝나긴 했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하다.
엘살바르도는 세계에서 살인율 순위로 항상 탑5에 들어가는 도시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그들이 총이나 칼을 가졌으면... 생각하기도 싫다.

정답은 캐무시. (특정동물을 비하하기 싫어서 무시앞에 캐를 붙였다)
그들이 차이니즈라고 부를 때는 친절히 코리아라고 가르쳐 달라고 부른 게 아니다.
단지 그들이 그렇게 부르고 싶어서 부른 것인데 거기다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요 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다행히 남미에서는 예전보다 치노라고 부르는 소리를 훨씬 적게 들었다.

하나 더, 그럼 진짜 중국인들은 치노라고 부르면 어떤 느낌과 반응을 가지는 지 궁금했다. 중남미에는 중국인 배낭여행자가 거의 없어서 남미에서 현지화 된 중국인에게 넌즈시 물어봤는데 자기를 치노라 부를 땐 비하해서 하는 건지 정말 중국인 친구라서 부른 건 지 느낄 수 있고 왠만하면 좋은 쪽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하기야 치노를 치노라고 부른는데 틀렸다고 할 수 없고 아무튼 그들의 대국적인 마인드가 새삼 부러웠다.

그러나 다시 찾은 아프리카에서 그놈의 차이니즈란 소리가 남미보다 훨씬 많이 들렸다.
그토록 내공을 닦아 캐무시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한 번씩은 심하게 귀에 거슬릴 때가 있다. 아프리카인들에게 동양인을 무시하는 역차별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제법 많이 있다. 같은 유색인종이고 그들 또한 피부색을 이유로 백인들에게 엄청나게 당하고 살았는데 아직도 백인들과 동양인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아프리카 사람들이 있다. 백인들에겐 여전히 깍듯하고 제일 만만한 동양인을 통칭해서 차이니즈라고 부르는 것이다. 사실 역차별이라고 쓴 것도 아프리카인에 대한 편견이 들어간 말이다. 가끔 차이니즈란 소리를 듣고 필요이상의 흥분을 하게 될 때는 그들이 백인들에게 무시당한 흑인이라서가 아닌 지 자문해 보시길.

다시 진도를 나가면

미니버스는 Yabelo 야벨로 분기점까지만 갔다. 승객들은 다 내리고 일본배낭족과 계속 얘기를 나누던 에티청년이 너무도 친절하게도 앞으로의 진로를 알려주었다.
야벨로에서도 아디스까지 가는 버스가 있는데 다음날 새벽에 출발한다. 보통 시간이 많은 여행자라면 이 분기점에서 에티오피아 원주민을 보러 Konso 콘소방향으로 간다. 일본여행자는 친절한 에티청년의 도움을 받아 미니버스를 타고 근처 콘소가는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길씨는 아디스아바바에서 수단비자를 받아야해서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아 아디스아바바를 향해 계속 가기로 했다.
일본배낭족을 바래다준 에티청년이 이번엔 길씨한테로 다가와서 아디스아바바까지 가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한다. 이 친구는 또 왜 일케 친절한 거야? 한편으로 과잉친절을 경계하면서 버스 옆에 앉았던 에티처자랑 셋이서 다음 도시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국경에서 부터 파란 색 영문 글자로 쓰인 곳이 버스를 갈아탔던 곳이다.

야벨라 분기점에서 다시 미니버스(차비 35비르)를 타고 Hagere Maryam의 버스터미날까지 가서 내렸다. 버스위의 짐을 내려주는데 팁을 달래서 큰 배낭을 건네받은 후 뒤도 안돌아보고 다음 버스를 탔다. 마침 터미날에 Dilla 딜라가는 대형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이번 여행의 가장 힘든 구간이 시작되었다.


Hagere Maryam에서 Dilla 까지 4시간 정도 흙먼지 구간

버스 좌석이 좁고 길이 험해서 힘든 것보다는 비포장도로를 4시간여 달리는데 흙먼지가 너무 날려서 버스안인데도 불구하고 숨쉬기 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그 다음날 목이 너무 아파 결국 약을 먹어야 했다. 이 구간을 버스를 타고 지나는 여행자는 필히 마스크나 마후라를 준비해야 한다.

버스가 Dilla 딜라에 도착했을 때는 해는 이미 저물어 7시가 넘었다. 해가 지면 더이상 장거리버스는 달리지 않는다.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 새벽에 아디스아바바까지 가는 버스를 타야한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생면부지의 처음온 도시에서 동네 꼬마들이 길씨 하나를 두고 둘러싼다. 옛날 아프리카 여행할 때도 버스에서 내리면 동네꼬마들에 둘러 싸였지만 그때는 처음보는 동양인이 신기한듯 순진한 눈빛으로 구경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가로등 하나 없는 밤거리라서 그런지 차이니즈하면서 득달같이 달라드는 꼬마들이 마치 먹이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보였다. 길씨를 잡아끌고 동네 숙소로 데려가 약간의 팁이라도 받을려고 큰소리로 서로 경쟁을 하면 지들끼리 난리부루스를 춘다.
이때 국경부터 같이 버스를 타고온 에티청년과 처자가 나타나서 길씨를 꼬마들로 부터 떼어내고 너무나 고맙게도 근처 저렴한 로칼숙소(일박 80비르)를 찾아내 데려갔다. 그 와중에 어두운 밤거리에서 무거운 배낭을 끌고가다 도랑에 빠져 왼발목을 삐었다.
숙소는 물도 안나오고 달랑 침대 하나만 있었지만 어차피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에 아디스아바바까지 가는 버스를 타야해서 눈만 붙이는데는 큰 문제는 없었다.

에티청년과 처자는 길씨를 안전하게 숙소까지 안내해주고 홀연히 각자 갈 길을 갔다. 숙소까지 오느라 다리도 다치고 정신이 없어 이름도 못 물어보고 제대로 감사의 표현도 한 번 못했다. 뭐 하나라도 뜯어가려는 삐기들한테 치를 떨며 당장 이 넘의 나라를 떠나야지 하다가도 이런 선인들을 만나면 그래 이맛에 여행을 하는거야 하고 계속 다니게 된다.
그후로도 길씨에게 에티오피아는 묘하게 이런 선인과 악인이 공존하는 그런 나라였다.

다음날 새벽 4시에 깨서 숙소 앞 버스 정류장을 가니 터미날 문을 열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었다. 다섯 시가 넘어 터미날이 열리고 아디스아바바 가는 대형버스(차비 110비르)를 탔다.
버스는 날이 새고도 승객을 다 채운후 6시반쯤에 출발했다. 다행히 여기서부터는 포장도로여서 길씨를 괴롭히던 흙먼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에티오피아의 일반적인 대형버스 3 X 2 좌석


중간에 도로가 식당에 버스를 세우면 내려서 점심도 먹고 먹거리를 파는 아이들


하나라도 더 팔아보려고 버스를 쫓아 달리는 아이


심지어 생선을 파는 사람과 사는 승객도 있었다.


한 번씩 이런 도로가에 차를 멈추고 검문을 한다.

다시 버스는 달려가다 아디스아바바 시내중심을 15키로 앞두고 버스가 퍼졌다. 파이샤라고 부르는 시내중심을 찾아가야 미리 보아둔 숙소를 갈 수 있다. 차는 한 시간을 기다려도 고치지를 못하고 있고 지나가는 택시는 얼마되지도 않는 거리를 말도 안되는 가격을 제시한다. 그래도 다행히 버스를 고쳐 시내중심에서 좀 떨어진 장거리버스 터미날에 드디어 도착했다.

시내에 진입하면서 고가도로 위에 전철이 다니는 게 보인다.


아디스아바바에는 경전철이 있다. 최근 몇 년전에 중국에서 만들어 준거라 아직도 운전석에 중국기사가 썬글라스를 끼고 현지기사를 가르치고 있다.


위의 파란색 라인의 Autobus Tera역이 장거리 버스 터미날 옆에 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게 경전철과 토모카커피 그리고 국립박물관이었다.
이 경전철 덕분에 시내 여러 곳을 단돈 2비르에 다닐 수 있었다.


파란색 종착역 Menilik 2 Square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어가면 파이샤(시내중심광장)가 나온다.

마침내 2박3일간의 기나긴 여정을 끝내고 숙소에 안착했다.


# 아디스아바바 숙소정보 #

배낭족들이 주로 찾는 파이샤 근처의 숙소



빨간 숫자

1번은 Minilik Light Train Station 미니릭 경전철역
2번은 TaituHotel 타이투호텔 화장실 없는 싱글룸 일박 200비르 와이파이 유료
3번은 Baro Hotel 바로호텔 화장실 딸린 싱글룸 일박 230비르 와이파이 무료
4번은 Wutuma Hotel우투마호텔 화장실 딸린 싱글룸 일박 260 와이파이 무료
5번은 Tomoca Cafe 토모카까페 에티오피아 커피의 진수를 맛볼 수 있고 살 수도 있다.


# 환율 #

2016년 6월 현재 환율
1달라 = 22비르
ATM이 잘되어 있어 환전보다 주로 현금인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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