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1일 일요일

여행에 지치다 Long trip makes me tired in Blantyre

20160121~20160203

Blantyre 블랜타이어의 Big Brothers Lodge 빅브러더스 호텔에서 먹고 자고 싸는 것만으로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모잠비크부터 국경을 넘어 블랜타이어까지 지난한 일들을 겪어서인지 빅브러더스 호텔에 둥지를 치고 자다깨다 몇 번 했더니 어느새 일주일이 가버렸다.
첫날은 온종일 잠만 잤고 둘쨋날은 잠이 덜 깨서 자고 그 다음날은 너무 잤더니 허리도 아프고 피곤해서 자고 또 그 다음은 자던 타성에 젖어, 자고 또 자고 일주일을 내리 잤다.

아래 사진의 호텔 구조를 보면 위층 발코니가 식당이라 하루 한 끼는 여기서 저렴한 로칼 정식이 1,200콰차(한화 이천원) 정도로 해결이 된다. 그리고 아래층 왼쪽 도로변에 보이는 Krazy 치킨은 이 도시에서 젤 유명한 치킨앤칩스 레스토랑이고 일요일에도 문을 연다. 저렴한 자체 식당과 같은 건물에 맛있는 치킨집이 있는 이런 천혜의 조건에서 어떻게 무위도식을 안 할 수 있겠는가?


빅브러스 건물 전경


일반적인 로칼정식, 먹기전에 사진을 찍어야 되는데 꼭 먹고 나서 찍는다.

왼쪽 하얀 것이 여기서는 시마라고 하고 탄자니아 위로부터는 우갈리라고 부른다. 옥수수 가루를 쪄서 백설기처럼 만들었다. 아무 맛이 안나는 맨밥과 같은 기본 주식이고 주메뉴 치킨과 볶음 채소 양념소스와 더불어 먹는다. 파란 플라스틱에 들어 있는 물은 마시는 게 아니라 인도식으로 손을 씻는 물이다.

일주일 동안 건물 바깥으로 두 번 나갔나보다, 한 번은 바로 앞 건물에 남아공항공 사무실이 있어 브라질에서 왕복표로 사온 항공권 리턴티켓이 환불이 되는 지 알아보러 나갔고 그 옆 건물이 TNM통신이라 스마트폰을 쓸 수 있게 유심칩을 사러간 게 지난 칠일동안의 길씨의 행적이다.

어느 통신사든 심카드를 사서 충전하면 말라위 어디에서나 스마트폰에서 인터넷을 쓸 수 있다. 길씨의 경우 건물 바로 앞에 있는 말라위 통신사 중의 하나인 TNM 블랜타이어 본점에 갔는데 아주 친절하게 전화기 세팅까지 다 해주었다. 각 나라마다 충전방식이나 인터넷 사용법이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략 아래의 방법으로 할 수 있다.

# 직접 충전하는 방법은 #

 1 통신사 유심카드를 사서 본인의 스마트폰에 넣고 전원을 켜서 안테나 신호가 잡히면 일단은 현지폰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현지 전화번호를 부여받고 충전한만큼 사용한다. 심카드는 1달라 이내의 가격이고 수신이나 통화만 할 생각이면 조금씩 충천해서 쓰는 것이 경제적이다.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충전을 한후 인터넷 번들을 신청해야 한다. 충전은 아래 사진에 있는 금액이 찍힌 에어타임 스크래치카드를 사면 된다. 에어타임 카드는 휴일에도 길거리 가판에서 쉽게 살 수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길씨의 경우 4기가의 인터넷 번들을 사용하려고 6,500콰차의 에어타임 카드를 사서 심카드에 충전했다. 충전한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인터넷 번들을 신청하면 유효기간 한 달안에 4기가 조금 넘게 인터넷 데이타를 쓸 수 있다.


위의 에어타임 스크래치카드는 100콰차부터 2,000콰차까지 다양하게 있다. 카드에 뒷면에 충전 방법이 있다. 직접하려면 본인의 전화기로 위의 카드에 설명된 순서대로 코드를 눌러 충전할 수 있다. 500콰차 에어타임 카드를 복권처럼 스크래치하면 위의 열여섯자리 숫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111*열여섯자리번호#을 누르고 통화버튼을 누르면 카드 액수만큼 충전이 된다. 총 6,500콰차를 충전하고 아래 사진의 인터넷 번들중에 4GB 코드번호 *200*14#을 누르고 통화버튼을 누르면 4기가 데이타가 세팅된다.


길씨는 총 6,500콰차를 에어타임 스크래치 카드로 충전하고 4기가를 선택하니 충전금액에서 4기가 데이타 사용료 6,400콰차가 빠져나가고 100콰차가 전화 수신이나 통화용으로 남았다.

~ 위 과정이 어려우면 평일에는 시내 어디서나 통신사 사무실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으니 찾아가서 부탁하면 된다.
~ 각자의 스마트폰에 따라 통신사 주파수가 달라 사용이 안되는 폰이 있으니 일단 가장 작은 단위로 충전해서 통수신 안테나가 나오나 확인해봐야 한다. 안테나가 잡혀도 폰 설정에 따라 인터넷이 안되는 경우도 있다. 네트워크 설정에 들어가서 액세스포인트의 이름을 tnm으로 바꾸고 APN을 internet으로 설정하니 길씨의 경우 데이타 수발신 표시가 폰 상단에 나타나며 인터넷을 쓸 수 있었다. 말라위는 3G 정도의 속도이거나 그 이하로 도심에서 멀어지면 잘 끊어지기까지 한다.
~ 사용량을 확인하려면 TNM의 경우 #123#을 누르면 알 수 있다.

이제 방에서도 인터넷이 되고 슬슬 마실이나 나갈까하고 동네한바쿠하다가 마트에 들러 먹거리를 사왔다. 길씨가 제일 좋아하는 정어리캔, 스파게티면, 달걀, 그리고 기본 소스들 이것만 있으면 스파게티 정도는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중남미에서 부터 즐겨 먹는 정어리캔
매운 고추와 토마토가 들어 있는 두 종류, 찌게부터 각종 요리에 유용하다.



길씨의 요리도구, 전기포트와 2구짜리 코펠 그리고 컵
인도산 매직전기포트(?)로 웬만한 요리는 다 할 수 있다.

일주일을 방콕하다 아예 방안에서 요리까지 시작했다.

그래 여행 뭐 있나? 방구석에 뒹굴어도 여행이다. 실제 미시적 관점으로 각자의 방안을 정밀하게 탐구해보면 여태까지 몰라던 것이 많이 보인다. 책상이나 침대 밑 방모서리 등등 잘 살펴보면 조그마한 생물들이 거기서도 그들 나름대로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있다. 늘 그자리 똑 같은 정물처럼 보이던 것도 시간에 따라 달라보이기도 한다.




우리돈으로 만원 정도의 싱글룸, 샤워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배낭을 메고 한국을 떠나 세계를 떠돈 지 이번 여행만 계산해봐도 거의 삼 년이 다되어 간다. 2003년 첫 번째 세계일주를 시작했을 때는 정말 열심히 다녔다. 그때는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한 곳에서 일주일 이상을 보낸 적이 없었다. 그랬던 길씨가 요즘은 배낭을 풀어 버리면 기본이 일주일이다. 그리고나면 떠날 때 다시 배낭을 싸기는 더 힘들어 진다.
배낭족 격언에 `머물면 떠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의 길씨가 딱 그런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좋게 말하면 여행의 패턴이 바꿘 것이고 그게 아니면 여행의 정체성을 상실한 것이다.

그럼 대체 이 여행의 정체성은 무어라 말인가? 호텔방을 나왔다. 마트에 들러 맥주며 싸구려 로칼럼을 종류별로 사와서 다시 방으로 들어가 마시기 시작했다.

알콜의 힘을 빌어 지나간 나날을 복기해보았다. 첫 번째 세계 일주를 시작했을 때, 그때도 이미 우리나이로 마흔이 된 늦깎기 배낭족이었고 나이 들어 하는 심기일전의 여행이라 퇴폐향략적인 유흥여행은 절대 삼가하고 배낭여행의 기본정신에 충실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기본적인 언어소통인 영어가 완전 젬병이라 여행내내 하루하루가 다음 날을 준비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했다. 첫 번째 유럽여행을 끝내고 겁도 없이 동아프리카로 넘어왔는데 한국어로 된 여행책자는 없고 지금처럼 인터넷 여행 블로그가 활성화 되지 않아서 그나마 정보라도 얻으려면 밤새 영문 가이드북을 번역해서 다음날을 대비하기에 바빴다. 그러니 언제 지긋이 한곳에 머물며 고독을 사치로 즐길 수가 있겠는가? 매일매일이 낯선 곳에서의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어쨌든 나라마다 유명하다는 관광지의 국민코스는 찍고다녔고 빡빡한 일정대로 짜여진 투어를 통해 엄청난 자연의 위대함을 맛보았다. 그런 식의 여행이 대륙을 이동하면서 계속되다 보니 언제부턴가 웬만한 유적이나 어메이징한 자연현상을 봐도 별 감흥이 안 생기고 심지어 카메라가방에서 사진기를 꺼내기도 귀찮아졌다. 그렇게 각 대륙의 기본만 찍고 첫 번째 세계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다음기회에 다시 세계여행을 하게 된다면 그때는 한 곳에 오래 머무리라고 다짐했다.

각국의 여행자들과 왜 여행을 하느냐고 얘기를 나누다보면 유적이나 자연현상, 각자 좋아하는 장르를 말하다가 결론은 사람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이 아름다워 길을 걷는다`
두 번째 세계여행에서 여행의 정체성이 모호해지면 길씨 스스로 답을 구하는 문구이다.

과연 그럴까?

더 심도높은 길씨의 여행철학은 앞으로 전개될 `올드보이를 위한 배낭 여행안내서` 여행의 만남편에 소개될 것입니다.

이쯤에서 길씨는 남은 술을 다 마시지도 못하고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취하지 않으되 혼미함이여.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게 싶은 자 잠들게 하라` 어디선가 강은교 시인의 싯구가 들리며 길씨의 알콜중추는 마비되고 애꿎은 베개를 부둥켜 안고 어느새 침대와 한몸이 되었다.

다시 또 하루가 밝아왔다.
여행중에 혼자 마시는 술은 취기가 더 빨리 오른다. 아침햇살에 눈을 떠서 스마트폰을 확인해보니 카톡으로는 한국의 친구들에게 페북메신져로는 세계각국의 여행동지들에게 음주톡을 보냈다. 이 기회를 빌어 시간대가 달라 자는 동안에 카톡이나 메신져를 받은 분들에게 심심한 사과를 드리며 다시 그 시간대에 음주톡이 오면 그냥 무시해 주시기를.
그중 하나 중미에서 만난 일본친구에게 이 포스팅의 영문 제목대로 메신져를 보냈더니 답장이 와 있었다.

리상, 집으로 돌아가라고...

바뜨 길씨는 돌아갈 집이 없다. 아니 삼년 전 한국을 떠날 때 집부터 팔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나왔다. 
그때 결심했다. 이제부터 길이 집이고 집이 길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번 남아프리카부터 여행의 테마를 `끝에서 끝까지`로 정했다. 이 여행의 반도 못하고 아니 아프리카의 중간쯤에서 여행에 지쳐서 스스로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니 여태껏 만든 홈페이지 제목이며 카테고리명이며 지금껏 불려온 길이란 이름이 아깝다.

그래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올해 안에는 길씨의 숙원 사업인 `올드보이를 위한 배낭여행 안내서`를 마무리 지어야한다.
그러자면 일단 호텔방부터 탈출하자, 냉샤워로 정신부터 챙기고 도시탐방을 나섰는데
블랜타이어에는 딱 두 군데 명소 밖에 없다.


시계탑 로타리를 지나

하나는




CCAP교회

그리고 또 하나는


Mandala House
블랜타이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란다.


그 집 정원

그리고 작은 이슬람 사원 몇 개만 보면 끝이다.

두 곳다 숙소에서 걸어서 삼십 분 안의 거리이다. 3시간만에 도시탐방을 끝내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엊저녁 먹다남은 김빠진 맥주를 마저 마시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언제 인생이 계획대로 아니 길씨의 의지대로 된 적이 있었나, 걍 사는 거지 모.
그리고 다시 잤다. 언제가는 떠나야 할텐데라고 되뇌이며......


그리고도 일주일 지나서 길씨는 호텔방을 떠날 수 있었다.

모잠비크에서 말라위 국경넘기 Crossing Malawi border

20160121

모잠비크에서 말라위 국경을 넘는 방법은 다른 국경에 비해 어렵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길씨의 경우 모잠비크부터 말라위의 숙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체킹포인트와 국경에서의 어이없는 환율사기 등에 진이 빠질대로 빠져서 말라위의 Blantyre 블랜타이어에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혹여 길씨의 경우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을지도 모르는 님들을 염려해서 국경넘기의 기나긴 하루을 소개합니다.

모잠비크 Chimoio 시모이우의 아담하고 깨끗한 숙소 Pink Papaya 호스텔에서 새벽 네 시에 일어나 걸어서 십 분 거리의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새벽 5시에 Tete 떼떼로 출발하는 대형버스를 탔다.
버스는 이른 아침이지만 승객을 다 채운후 다섯 시를 좀 넘겨 출발해서 떼떼시 외곽에 있는 정류장에 오전 열한 시 전에 도착했다. 버스를 내린 곳에서 국경도시 Jobue 조부에까지 샤비(로칼 미니버스)를 갈아타고 모잠비크 국경입구까지 가면 된다.
버스는 국경을 대략 10키로 정도 앞두고 체킹포인트에서 군인들에게 검문을 당하는데 유독 길씨만 미니버스에서 내리게 했다.
그동안 모잠비크에서는 많은 검문소에서 경찰과 군인들이 번갈아 가면 검색을 핑계로 차를 세워 삥을 뜯는 모습을 여러번 보았지만 거의 운전기사에게 해당되는  일이었고 여행자인 길씨에게 직접적으로 여권등을 보자며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국경을 거의 앞두고 마지막 검문소인듯한 곳에서 여권의 비자며 입국스템프등을 한참보다가 뜬금없이 옐로카드를 요구했다.
일반적으로 황열병 증명서는 입국시 이미그레션에서 요구하는 게 상식인데 이제 곧 이 나라를 떠나는 여행자에게, 이미그레이션 오피서도 아니면서 검문하는 군인이 요구하다니 이 무슨 웃기는 짬뽕인지?
아무튼 남미 콜롬비아에서 무료로 접종한 옐로카드를 보여줬더니 또 한참을 이리저리 살피고 나서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한다. 알다시피 황열병은 접종후 십 년까지 유효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접종일인 2014년이란 숫자를 찾아내서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이쯤되면 길씨의 인내심 또한 바닥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몇 마디 안되는 포루투칼어로 설명해봐야 작은 꼬투리라도 잡으려는 자에게 들리지도 않을테고  영어는 이미 이미 무용지물이 된 이곳에서 지난 이 년동안 남미에서 제일 많이 사용한 에스파뇰인 껫빠사(뭔일이래?)를 시작으로 뽀르께(왜?) 등의 단어를 남미특유의 제스추어(손동작)을 보태어 그들이 알아듣든지 말든지 길씨 또한 큰소리로 대거리를 해버렸다.
로칼과도 웬만하면 싸우지 않는게 배낭여행자의 기본룰이거늘 같은 버스에 탄 현지인들이 지켜보는 도로옆 검문소에서 총을 든 군인과 황열병증서의 유효기간을 가지고 말싸움을 벌이고 있다니...
길씨의 스페인을 조금이나마 알아들었는지 아님 길씨의 어투에서 니놈들에게 한푼도 줄 수 없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던지 몇 군데 전화를 걸어서 유효기간에 대해 알아보는 척하다가 다시 버스에 타게 해줬다.
사실 이런 상황은 돈을 달라는 것 말고는 해석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다시 얼마를 더 가서 모잠비크 출국 이미그레이션에 도착했다.
거기서도 출국하는 마당에 손가락 지문인식까지 끝내고나서 말라위 쪽으로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환전삐끼가 달라붙어 좋은 가격으로 쳐준다며 전자계산기를 꺼내 오십달라를 당시 환율로 계산기에 찍어 보여줬다. 어차피 말라위에 가면 현지화폐가 필요하고 말라위 국경까지는 걸어서 가기는 멀고 오토바이라도 타려면 약간의 돈이 필요한지라 오십달라만 바꾸기로 하고 얼마냐니까 계산기에 찍힌 금액을 제시했다.
그때 조금만 더 집중력을 발휘했어야 했는데 좀전의 군인들과의 실랑이로 기력이 빠진 상태에 계산기에 찍힌 금액보다 더 주겠다고해서 바로 환전을 해버렸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타고 말라위 입국 이미그레션에 도착해서야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아차렸다. 당시 말라위 환율이 1달라에 710콰차 정도이고 50달라면 최소 35,000콰차는 받아야 맞다. 아까 삐끼가 전자계산기로 오십 달라를 당시 환율에 맞게 계산기로 찍어 보였을때 분명 25,000콰차 이하로 나왔고 덤으로 25,000콰차에 맞춰준다는데 솔깃해서 기본적인 암산도 하지않고 계산기에 찍힌 금액만 보고 25,000콰차만 받았던 것이다.
사실 이건 고전적인 환전 사기 수법에 속하는데, 그들이 가진 계산기에는 어떤 금액을 곱하거나 계산해봐도 특정 금액이 나오게 고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집중력부족과 약간의 덤에 꾀여 얼른 말라위로 넘어가고픈 급한 마음에 대략 15달라 상당의 금액을 속절없이 당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모잠비크는 달갑잖은 마지막 인상을 남긴 채 말라위 이미그레이션으로 넘어왔다.
길씨는 이미 모잠비크 마푸토에 그동안 여행중에 가장 비싼 비자피 백달라를 주고 받은 비자를 보여주고 군말없이 한 달짜리 스템프를 받았다.
나중에 다른 여행자를 통해 안 사실이지만 길씨처럼 말라위 인근 나라에서 모잠비크 대사관을 직접 찾아가 비자를 신청하면 백달라에 한달짜리 싱글엔트리비자를 주는데 진즉 국경에서는 75달라만 내면 똑같은 비자를 받는다고 한다.
모잠비크 대사관에서 영사인지 모를 아저씨가 국경비자는 없다고 했는데 ... 개뿔.
하루 숙소 십달라 미만에서만 자고 일달라 이달라에 목숨거는 육로여행 배낭족에겐 적지않은 돈을 길바닥에 뿌리고 말라위에 입국한 것이다.
말라위 이미그레션을 지나자마자 보란듯이 나타난 은행의 공식환전소의 전광판에는 그날의 시세표대로 일달라 710콰차라고 빨간 숫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이런 써글.

그리고 조금 걸어가니 오늘의 목적지 Blantyre 블랜타이어에 가는 미니버스가 길 옆에 대기하고 있다.
그래 이미 지나간 일들은 잊고 빨리 숙소로 가서 짐을 풀고 오늘 하루는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푹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가 오후 한 시쯤 지났나보다, 국경에서 블랜타이어까지 50키로 정도 거리여서 천천히 가도 두 시간후면 도착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아프리카의 로칼버스는 승객이 다 차야 출발한다. 다행히 말라위 이전의 나라에서는 순식간에 버스가 만차가 되며 길어도 십분정도만 기다리면 승객을 꽉 채워서 출발했다. 말라위도 그러려니하고 차비를 지불하고 버스에 들어가 앉았다. 십 분이 지나고 이십 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넘어가도 만차가 안되더니 급기야 두 시간을 기다려 승객을 모두 채워 버스는 출발했다.
그렇게 출발한 버스가 얼마를 가지 못하고 또 검문을 당한다, 국경에서 부터 십키로 안되는 거리에 무려 네 번의 체킹포인트에서 차를 세우고 검문을 했다. 이제 슬슬 날이 어두워지는데, 처음가는 나라의 낯선 도시는 가급적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도착하려고 이날도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버스를 탔는데 블랜타이어 시내에 도착할 때는 어둔 밤이 되었다.
그래도 미리 검색한 Doogles 두글레스 호스텔이 블랜타이어의 Wenela 웨넬라버스터미날 바로 옆에 있어 내리는대로 쉽게 찾아가리라 생각했다. 버스는 길씨가 생각한 정류장이 아닌 숙소에서 2키로 정도 떨어진 곳에 저녁 여덟 시가 다되어 도착했다. 버스 기사에게 왜 그 정류장까지 안 가냐니까 여기가 자기들 종착지라면 원하면 데려다 줄 수 있어니 돈을 더 달라고 한다.
오늘은 끝까지 인간들이 밉다, 바로 스마트폰 GPS맵을 꺼내 낯선 도시의 밤이지만 숙소를 찾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호스텔은 길씨가 알고 있었던 가격보다 두 배 이상 비싸고 캠핑장은 없어졌다고 한다. 이미 날은 저물고 기진맥진한 길씨는 두 말없이 돔룸의 한 자리에서 뻗더러져 긴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눈을 떠서 나미비아에서 중국 배낭족 벤에게 얻은 정보를 기억하고 그가 추천한 빅브러더스 호텔을 찾아 나섰다.
지난 밤에 보이지 않던 두글라스 호스텔 뒷편으로 돌아가면 싸게 캠핑이 가능한 롯지도 있고 곳곳에 로칼 숙소가 눈에 보이고 시내를 몇 바퀴 돌아서 마침내 빅브러다스 호텔을 찾았다. 인도사람이 오너인 이름만 호텔이지 별이 몇 개나 되는 그런 호텔과 비교할 수 없지만 싱글룸이 오천콰차부터 샤워할 수 있는 화장실까지 딸려 있었다.
이정도면 배낭족에겐 특히 모든 것을 가성비로 따지는 길씨에겐 훌륭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어제의 숙소에 가서 짐을 찾아와서 빅브러더스호텔에 안착했다.

아래 지도의 표시된 곳이 Big Brothers Lodge 빅브러더스 호텔이다. 알고보니 전날 밤 버스 내린 곳에서 오 분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미리 정확한 위치를 알았더라면 녹초가 되어 배낭을 지고 밤거리를 한참을 걷지도 않았스련만....

아무튼 새로 마음에 드는 숙소를 찾아낸 것만으로 지난 하루동안의 길고도 힘들었던 일련의 보상이라고 스스로 위로 했다.






비용

~ Chimoio시모이우에서 Tete 떼떼까지 대형버스는 전날 미리 터미날 근처에 정차된 대형버스를 찾아가 500메티칼에 구입하고 버스탈 때 짐값으로 200메티칼 더 냈다.

~ 떼떼에서 Jobue 조부에 국경까지 미니버스는 270메티칼.

당시 환율 1달라 = 50 모잠비크 메티칼 정도.


~ 모잠비크 이미그레션에서 말라위 이미그레션까지 국경사이 오토바이 이동비용 500콰차.

~ 말라위 이미그레션에서 Blantyre 블랜타이어까지 미니버스 2,000콰차.

~ Doogles 호스텔 도미토리 일박에 10,000콰차.

~ 빅브라더스호텔 오천부터 칠천콰차까지 욕실딸린 싱글룸이 있다.

당시 환율 1달라 = 710 말라위 콰차. 현재 2016년 2월 중순 1달라가 750콰차까지 올랐다.


2016년 1월 8일 금요일

모잠비크 캠핑라이프Camping Life in Mozambique

20151228-20160112

길씨는 2016년 1월 5일 아침 08시 모잠비크 동해안 Vilankulos 비랑쿠로스의 바오밥트리 백패커스에서 지난 일주일을 반추하며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 사이 한 해가 지났지만 일기장에 습관적으로 2015년이라 적고 다시 5를 6를 고치는 행위를 반복한다. 지난 해 크리스마스를 스와질랜드에서 보내고 정들었던 손젤라 백패커스를 떠나 모잠비크에 들어 왔다. 마푸토에서 말라위 비자를 만들고 바로 새해 해돋이를 보러 동해안 Tofu 비치에 가서 새해를 맞이한 후 해안을 따라 북상해서 여기 바오밥트리 캠핑장에 안착했다.




모잠비크의 수도 마푸토에서 비자를 만드는 이틀 동안 시내와 해변가를 둘러 보았는데 딱히 인상에 남은 것이라고는 도로명이 김일성, 마오쩌둥, 호치민 등 아시아의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이름을 따서 만든 거리들과 아래 사진에서 검지 손가락을 위로 치켜세운 인물상 정도였다.








시청앞 초대대통령 사모라 미쉘의 동상
모잠비크는 기나긴 포루투칼 식민지를 겪다가 1975년에야 독립했다. 독립 당시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다. 공교롭게도 독립기념일이 6월25일이다. 

해변가를 따라 걷다보면 신축중의 건물과 바다풍경






해안선은 그럭저럭 볼만한데 주변에 쓰레기에 너무 많다. 이래서 모기가 많은 나라로 악명이 높은 건지?


사진의 앵글 밖은 거의 쓰레기 소굴이라 보면 된다


특이하게 생긴 병모양의 쓰레기통이 도심을 향해 시위하는 듯하다

나라마다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를 보면 그 나라의 경제와 정치 상황 및 앞으로 얼마나 발전하고픈 의지가 있는 지를 가늠할 수 있다.


말라위 비자 취득과 함께 마푸토는 마무리 짓고 숙소에서 연계하는 중형버스를 타고 토푸에 있는 같은 이름의  파티마 백팩커스에 도착했다.




나미비아의 숖라이트에서 침낭과 한묶음으로 싸게 구입한 텐트는 모잠비크 부터 그 위력을 발위한다. 캠핑을 하면 저렴하게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다. 해변가 캠핑장은 대부분 공용주방이 있고 바다가 바로 앞이라 언제든 물속으로 뛰어 들 수 있다.


토푸는 모잠비크에서 꽤 알려진 해변이라 길씨처럼 연말연시를 지내러 온 관광객들이 많이 있었다. 밤마다 숙소에서 주최하는 바다축제와 날밤을 지새는 광란의 춤판이 연일 이어졌으나 이미 올드보이의 대열에 합류한 길씨의 취향은 아니었다.



구름에 가린 새 해를 맞이하고 토푸를 떠나


비랑쿠로스를 가는 버스를 타려면 배를 타고 인근도시 Maxixe 막시세로 가야한다
손젤라에서 봤던 매기와 필 커플을 다시 만나 같이 비랑쿠로스로 갔다.


그리고 여기 바오밥트리 백패커스에 도착했다.






바오밥 아래 텐트를 칠 수 있다고 했는데 바오밥나무는 아니었다. 바오밥은 이파리가 많지 않다.

도착하면 숙소에서 인근 정보 및 투어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느리고 잘 끊기지만 인터넷이 되고 얼마의 보증금을 내면 주방에 있는 개인 로커에 주방용구를 제공한다. 각각의 주방용구는 사용후 체크아웃할 때 일일히 갯수를 확인하니 잘 관리하여 돌려줘야 페날티를 물지않고 보증금을 돌려 받을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은 지금껏 여행중에 사용했던 주방중에 제일 선진적이다

숙소앞에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해질녘 숙소 바로 앞까지 가득찬 물이


오전이 되면 다 빠져나가고 파스텔톤의 바닥을 드러낸다


모잠비크 캠핑라이프의 아침 해는 매일매일 떠오른다


비용

마푸토 파티마 백패커스 캠핑비 일인일박 600메티칼(토푸파티마 600)
비랑쿠로스 바오밥트리 캠핑비 일인일박 400메티칼(도미토리 500)
바오밥트리는 주방에 개인로커가 있고 각 개인당 기본 주방도구를 제공하는데 디파짓으로 500메티칼을 내야한다. 체크아웃할 때 디파짓을 돌려받을 수 있고 분실한 경우 배상해야한다.


2016년 1월 4일 월요일

마푸토에서 말라위 비자 받기 The easist but expensive Malawie Visa in Maputo

이제까지 받은 비자 중에 제일 싱겁게 그러나 제일 비싼 말라위 비자를 모잠비크 마푸토에서 받았다.

20151229


비자 받기

1 아래 지도의 말라위 대사관을 찾아간다. 대사관들이 줄지어 잇는 Av. Kenneth Kaunda 거리의 제일 끝에 있다.



2 사진 두 장 여권 그리고 미화 백달라들 준비해서 가면 영사로 보이는 아저씨가 기입하라고 서류 두 장을 주며 여권과 백달라를 챙겨간다.

3 이십여분 정도 생소한 영문 서류를 번역해가며 기입하고 있으면 좀전에 그 아저씨가 이미 여권에 비자 스템프를 찍어가지고 왔다.

4 서류문항을 다 채우지도 못했지만 기본 인적사항만 적어 건네고 언능 여권 받아서 비자스템프 찍힌 페이지만 확인하고 대사관을 나왔다.

5 서류받아서 여권 비자 스템프 받기까지 총 20분 소요.

요령

요령이랄 것도 없고 대사관(영사관?) 8시부터 문을 열긴하나 너무 일찍 가면 직원도 없고 경비만 지키고 있다.
길씨는 아홉 시쯤에 갔는데 그때도 아무도 없어서 경비가 전화하더니 기다리라고 했다. 이십분 정도 지나서 여직원 한 명이 나타나고 또 이십 분 쯤 지나서 반바지 차림에 아들내미 한 명을 데리고 나타난 영사로 보이는 아저씨가 악수 한 번하고 다 처리해 주었다.
까다로운 질문 없이 여권과 돈부터 챙겨서 이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이런 행동은 비자를 바로 내 주겠다는 의미로 길씨는 잽싸게 판단하고 나머지 빈칸을 어떻게 채워야하는 지 일일히 따져묻지 않고 언능 비자스템프가 찍힌 여권을 받아 나왔다.
하긴 미화 백달라는 배낭족에게도 그들에게도 큰 돈이지 싶다. 나오면서 그 아저씨에게 국경에서 똑같이 받을 수 있냐니까 단호하게 No라고 답했으니까.
뭐가 확실한 지 확인 할 수는 없지만 국경에서 받았다는 여행자도 많이 있었다. 위의 글은 길씨의 경우이고 다른 포스팅을 검색해보니 오전에 신청해서 오후에 받았다고 올린 글을 봤다.

# 2016년 1월 시점, 말라위 여행중에 만난 외국여행자들은 국경에서 75달라에 한달짜리 말라위 싱글엔트리 바로 받았다고 한다. 국경에서 받을 수 있을거라 짐작은 했지만 미리 인접국 대사관을 찾아가면 더 비싼 비자피를 받는다는게 납득이 안 된다.

# 말라위 대도시 예를 들어 릴롱궤나 음주주에 가면 쉽게 비자를 연장할 수 있다. 한달연장에 5,000콰차 두 달에 10,000콰차만 내면 바로 그자리에서 연장스템프를 찍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