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7일 금요일

붉은 사막, 차는 돌아누워도 여행은 한다 Red desert Sossusvlei

20151016-20151030
Namibia


전날 오전 케이프타운부터 밤새 달려 다음날 아침 여덟 시가 되어 빈트후크의 인터케이프 버스터미날에 도착했다.



길씨의 여행은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새로운 나라 낯선 도시의 거리를 배낭을 메고 끌면서 시작된다. 특히 밤버스를타고 새벽이나 아침 일찍 터미날에 도착하면 안전을 위해서라도 날이 샐 때까지 대기실에 머물다가 거리에 정상적인 사람들의 아침 행렬이 보이면 터미날을 나와 숙소를 찾아 나선다. 대부분의 호스텔은 체크인 시간이 오전 열한 시 이후인지라 일찍 가본들 리셉션에 앉아 기다려야한다. 숙소가 버스 내린 곳에서 반경 4키로미터 이내, 대략 배낭 메고 걸어서 한 시간 내의 거리는 건강을 위해서라도 길씨 스스로 걸어 다니기로 약속한 거리였다. 스마트폰의 오프라인맵에 미리 숙소의 위치를 지정해놓고 GPS 신호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새로운 도시의 아침을 맞으며 걸어가는데 갈수록 인적이 드물다. 분명 구글맵에 Cardboard Box라고 표시도시 된 곳으로 가고있는데 점점 도심 외곽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케이프타운에 있을 때 여기 호스텔을 다녀왔던 여행자한테 들은 바로는 버스터미날에서 멀지 않다고해서 삼십분이상을 지도위 표시를 따라 걸었는데도 호스텔로 보이는 건물이 없었다. 결국 근 한 시간을 걸어서 지도에 Cardboard Box라고 표시된 곳에 도달해서 주변을 바라보니 차들이 달리는 로타리 한가운데 서 있었다. 호스텔부킹 사이트에 소개된 구글맵에도 이 지점으로 표시되어 있고 주소 또한 같은 이름의 도로명이었다. 벌써 한 시간째 아침의 땡볕을 온몸으로 받은 길씨의 몸은 벌겋게 달아오를 데로 올라 일단 그늘을 찾아 배낭을 내려두고 몸부터 식혔다. 다시 맵을 꺼내 주소에 있는 도로명의 거리를 쭉 훑어 내려가니 이 거리 제일 끝에 같은 이름이 또 하나 있었다. 이런 난감할 때가, 여기서부터 다시 이 도로의 끝에서 끝까지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다시 한 시간을 더 걸어 이 도시의 아침을 만끽하고 드디어 호스텔에 도착했다.

스마트폰의 오프라인 맵 사용법은 '올드보이를 위한 배낭여행안내서' 배낭여행자의 장비편에 소개됩니다.



이 광고판 뒤로 호스텔이 있다.


Cardboard Box Hostel 나름 배낭족에게 유명한 가성비 괜찮은 호스텔이다.


길씨가 이 호스텔을 굳이 찾아온 이유는,빈트후크에서 제일 싸기도하지만, 이 곳에 오면 나미비아 붉은 사막을 가기위한 렌트카투어 멤버를 찾기 쉽다는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나미비아의 대표적인 명소인 붉은 사막 Sossusblei 소쎄스블레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명 관광지는 개인적으로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서 찾아다니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그도 그럴것이 주로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봉고차 정도의 미니버스가 대중교통 수단으로 도심 주위로만 다니고 사막이나 힘바족이 사는 북부의 Etosha 에토샤국립공원까지 가는 장거리 버스는 아예 없었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여행사나 숙소에서 제공하는 투어를 이용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심지어 단 두 명만 렌트카로 다녀와도 투어보다 싸게 먹힌다, 늘 가난한 여행(방값 아껴서 술 사먹는 여행형태)을 지향하는 길씨의 여행 패턴으로 봐서 선택의 여지 없이 렌트카 멤버를 기다려야 했다.
나미비아의 도로는 과거 영국식민지의 영향으로 차들의 진행방향이 한국과 반대이고 당연히 핸들과 기아조작이 길씨에겐 쉽지가 않다. 그래서 이런 차선의 운전에 익숙한 일본여행자와 렌트카를 하고 싶었는데 다행히 케이프타운에서 여기로 넘어올 때 같은 버스을 타고온 세 명의 일본여행자들이 있었다. 그들 또한 차를 렌트하고 싶었고 대충 말을 건네보니 같이  다니는데 거부감이 없어 보였다. 여기 오자마자 모든 게 술술 풀려간다고 생각하는 찰나 두 명의 일본인 커플이 등장하더니 그들 다섯 명이 한팀이 되어 차를 빌리기로 했단다. 졸지에 길씨는 따로국밥이 되어 다시  새로운 인물을 기다리게 되고 이렇게 빈트후크의 생활은 차를 운전할 인물을 기다리면서 시작되었다.
며칠을 더 있을 지는 모르지만 먹거리부터 장만하고 현지재료로 엉터리 김치부터 만들기로 했다. 그동안 장기여행을 통해 터득한 길씨의 생활방식은 대략 일주일 이상 머무는 곳에는 마트에 들러 기본 먹거리와 한국의 음식과 가장 비슷한 현지재료를 골라서 비스무리 김치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김치는 오리지날 정통 김치의 그 맛은 아니어도 한동한 김치를 구경하지 못한 한국여행자나 김치에 대해 알고 있는 외국여행자, 특히 김치 맛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일본여행자들에겐 꽤 효과적인 상호 교감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물론 길씨는 그들에게 비스무리 김치를 해줄 때마다 정통 한국 김치가 아니라고 항상 밝히고 제대로 된 김치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게 하려고 했다.

비스무리 김치 담기는 '올드보이를 위한 배낭여행안내서'의 배낭여행 먹거리 레시피에 소개됩니다.

기본 먹거리와 짜가 김치가 넉넉하면 길씨의 마음마저 여유로운 여행생활자 모드로 바뀐다. 빈트후크 시내를 돌아보며 기차역에 가보고 거리의 철제 부시맨도 만나고 북한이 지어주었다는 박물관에도 가보았다.

















역시 선전선동 풍의 건물과 박물관 내부 양식은 북한이 잘 만드나보다.

그러던 어느날 유라시아를 넘어  아프리카 까지 넘어온 중국인 여행자 커플 벤과 샤오펑이 등장했다.


중국 배낭족  벤과 샤오펑 그리고 타이스케

둘다 예사롭지 않은 풍모에 누가봐도 장기여행자로 보인다. 그들도 렌트카투어를 같이 할 사람을 찾고 있었지만 운전은 커녕 운전면허증도 없었다.

그리고 그가 나타났다. 잘생긴 외모는 차치하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반대차선에 익숙한 운전능력과 차를 렌트할 때 꼭 필요한 따끈따끈한 국제운전 면허증을 소지하고 있었다. 사실 길씨의 국제운전면허증은 이미 일년 단위의 유효기간을 경과한 지 오래됐다.


길씨는 이럴 때를 위해 준비해둔 김치와 먹거리로 중국 배낭객 벤은 수려한 입담으로 타이스케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여 한중일 연합 렌트카팀을 전격적으로 결성했다.

바로 시내 외곽에 있는 렌트카 회사를 방문했으나 주말이라 이미 모든 차가 대여중이고 단기로 며칠은 렌트를 안 해준다. 그동안 근 일주일을 기다렸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고 다시 몇 군데 렌트카 회사를 물어물어 찾아갔으나 역시 렌트할 차가 없었다. 어째 길씨 인생에 뭐 하나 쉽게 풀리는 일이 없다고 푸념하고 성과 없이 돌아와 맥주 몇 병을 까고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숙소의 여행자 정보책 책장 위해서 새로운 렌트카 회사 명함 하나를 발견했다. 샤오펑이 전화를 해보더니 내일 차를 렌트할 수 있다고 한다. 그담날 아침 바로 회사로 달려가 계약부터 하고 사인승 폭스바겐 소형차를 끌고 나왔다.

중간에 마트들러 캠핑장에서 먹을 고기도 사고 호기롭게 시작한 다국적 붉은사막 렌트카팀.




이때까지만해도 설마 차가 뒤집히리라고는 그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빈트후크를 출발해 처음 백키로 정도는 아스팔트 포장이 잘되어 있었다. 두 시간 정도의 운전을 하고 나니 포장된 도로는 아니지만 비교적 넓고 바른 도로가 이어졌다. 그때쯤 도로 갓길쪽으로 자갈이 많은 곳에 접어 들어 있었나보다. 세 시간 이상의 운전이 아무래도 집중력을 떨어뜨렸는지 잠시 차가 도로 가장자리를 밟는 순간  조수석 바퀴가 미끄러져 차가 왼쪽으로 쏠렸다. 운전자는 오른쪽으로 급하게 핸들을 돌렸지만 그때 바퀴는 이미 자갈밭을 미끄러져 도로 중앙을 침범하고 있었다. 당황한 운전자는 다시 급하게 왼쪽으로 핸들을 꺽게되고 그 순간 차는 스핀을 먹고 도로 역방향으로 돌더니 갓길에 오른쪽 문짝을 들이대고 누워버렸다. 이 짧은 몇초간의 순간이 영화의 한 장면에서 봤던 대로 슬로모션으로 길씨의 뇌리에 생생히 새겨졌다.




중앙선을 침범한 바퀴의 선명한 스퀴즈 마크


길씨의 차는 영화에서 했던 것처럼 도로 역방향으로 핑그르르 돌아가서 갓길 옆으로 누워버렸다. 어느새 오른쪽 운전사 옆의 창은 땅바닥이 되어 있고 길씨의 조수석 창은 파란 하늘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약간의 정적... 안전벨트 덕에 조수석에 매달린 길씨에게 대략 삼초정도의 그 순간이 삼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다들 한마디, 아 유 오케이?
길씨 먼저 열려진 창문으로 탈출하고 나머지 한 명씩  창을 통해 나오게 도와주고 제일 마지막에 밑에 깔린 샤오펑을 꺼집어 냈다.
그런데 말입니다, 차를 나와서 서로의 상태를 확인해보니 놀랍게도 한 명도 한 군데도 다친 사람이 없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차가 옆으로 들어누웠는데 다들 이렇게 멀쩡하다니?
차 시동부터 끄고 옆으로 누워있던 차를 일으켜 세우니 두 바퀴는 주저앉고 사이드미러는 박살이 나 있었다.



사진을 찍어둘까 하다가 뭐 좋은 일도 아닌데 마음이 안 내켜 차부터 일으켜 세웠다.

정신을 수습하고 차상태를 보니 왼쪽 땅바닥에 닿은 문짝 주위는 패이고 찍혀 있지만 전체적으로 함몰되거나 파손된 곳은 없었다. 이제 어떡하지? 렌트카 회사에 연락부터 해야되나, 보험은 될까, 여러 생각이 났지만 지나가는 차를 세워 도움을 청했다.
그때 천사같은 현지인 부부가 나타났다. 근처에서 농장을 한다는 넉넉한 아저씨가 먼저 바퀴중 하나를 예비바퀴로 바꾸어보더니 바퀴만 바꿔 달면 다시 달릴 수가 있을거 같다고 한다. 너무나 고맙게도 펑크난 바퀴를 가장 가까운 정비소에 가져가서 고친 후에 갈아주었다.



다시 시동을 걸어보니 차가 움직인다. 아무도 안다친 것만해도 기적인데 차가 정상적으로 움직여주기 까지 한다. 다들 이번 여행이 여기서 끝나는구나라고 생각한게 불과 몇 분 전인데 놀랍게도 다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Windhoak in Namibia

And Sossusvlei Desert.....

We hired the car to go to Namibian Red Desert. Driver lost handling because of small stones on the road. The car turned onto my right side. I escaped first and checked other guys. Fortunately nobody hurt. We made our car stand and fixed two tyres with very helpful local couple. The car was running again by mysterious power. Anyway we experienced extreme Rent a car tour, even we paid some penalty. Please never speed up on gravel road.


드뎌 나미비아 붉은 사막에 도착했다




캠핑장에 체크인하고 해 떨어지기 전에 일몰이 유명하다는 둠 45로 다시 달렸다.




돌아와 밥 해먹고 다음날 일출보려고 바로 잤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어제 간 둠에서 일출보고



데드밸리를 가기 위해 셔틀트럭 정류장까지 또 차를 몰고 갔다.



데드밸리는 모랫길이라 이륜 승용차로 갈 수 없고 셔틀트럭을 갈아타고 가야한다.



언제 사고가 났던가 싶게 어제 일은 다 잊은 듯한 다국적렌트카팀


데드밸리의 사막언덕을 넘기전에 있는 유일한 푸른 나무


저 멀리 사막언덕을 넘어가야 데드밸리가 나타난다


사구의 모래톱을 끝선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며


언덕 아래로 데드밸리가 보인다

바닥이 거북 등껍질 마냥 갈라져 있고










오래전 호수였던 곳이 말라서 된 데드밸리와 말라비틀어진 나무가 묘한 색감을 이룬다

그리고 빈투후크로 돌아왔다.


# 차 배상 처리 관계

렌트카를 계약할 때 보험관계나 차 서류를 꼼꼼하게 읽어보고 확인해야 되지만 대부분이 그냥 지나치거나 렌트카 회사 담당자의 말만 듣고 서명한다.
보통 국제운전 면허증이 있는 운전자의 명의로 계약서에 서명하고 보험에 들게 되는데 서명 당사자는 더 꼼꼼히 서류를 읽어봐야 한다.
처음 렌트카 회사 담당자는 보통 시속 팔십에서 백키로 정도로 운전하면 된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험약관을 확인해보니 자갈밭 비포장도로에는 시속 60키로 이하라고 되어 있었다.
일단 사고가 나면 근처 경찰서, 소서스블레이 사막에는 캠핑장 바로 옆에 경찰서가 있고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지 바로 증빙서류를 만들어 준다.
서류를 가지고 다시 렌트카회사로 가서 보상비 협상을 해야한다. 경우에 따라 보험 처리가 되거나 안되는 것이 있는데 길씨 일행의 경우 반반쯤 이었다.
결론적으로 총 비용을 지불하고 결산해보니 그래도 개인적으로 투어를 다녀온 가격의 반값이었다.





2015년 10월 10일 토요일

나미비아 비자 만들기 Making Visa for Namibia in Capetown

케이프타운에서 나미비아 비자 만들기

# 2016년 현재 시점 케이프타운의 나미비아 영사관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답니다.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아래의 사진에 있는 곳은 아랫글 작성시점에 영사관이 있던 곳입니다.



# 나미비아 영사관 위치 : 롱스트릿 끝쯤의 Triangle빌딩. 입구관리실에 서명하고 엘레베이타로 올라간다.


롱스트릿 끄트머리 멀리 옥상에 피라밋 보이는 건물.



# 준비서류 : 아래 양식에 맞춰 미리 준비해서 간다.



1번은 위 양식을 다운 받을 수 있는 인터넷 주소

2번은 여권 앞 주요면과 남아공 입국시 받은 최대 한달 짜리 비자스템프 날짜 찍힌 면을 각각 복사

3번은 여권사진 두 장

4번은 Motivation letter로 나미비아여행 목적등을 영문 워드로 작성후 프린트

5번은 나미비아에 머물 숙소 예약증 프린트

6번은 여행일정을 영문워드로 작성해서 프린트 해야한다

7번은 나미비아 입국방법 버스표나 비행기표를 복사하고 출국티켓까지 복사해가야 한다

8번은 필요 없고

9번은 처음 접수 때 드는 비용 80랜드

10번은 찾을 때 드는 돈 390랜드

11번은 처리기간 이삼 일 소요됩니다.


# 목요일 오전에 신청해서 그 다음주 월요일에 수령했다.



사진을 두 장이나 제출했는데 비자면에는 사진카피는 없고 스템프에 볼펜으로 유효기간만 적혀 있다.


# 주의사항 및 요령

영문서류는 컴퓨터를 이용해서 일정과 숙소 주소, 이동방법 등을 상세히 적어서 프린트해서 가져간다. 가져간 서류를 보고 담당자가 영어 인터뷰 형식의 몇 가지 질문을 한다. 출국티켓은 아프리카 아웃바인딩으로 귀국행 항공권이나 인접국가로 나가는 것이면 된다. 실제 위 서류들의 진위(?)를 비자담당자가 꼼꼼히 확인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만들어준 서류를 보면서 일정등을 질문했다. 되도록 한 번에 끝내려면 왠만한 서류는 다 만들어 가는 게 좋지 싶다.

비자비용을 잔돈으로 딱 맞추지 않으면 거스름 돈이 없다고해서 다시 건물 밖에 나가서 바꿔야된다. 일부 여행자는 다시 나갔다 들어오기가 귀찮고 피곤해서 나머지를 팁으로 생각하고 받기를 포기한다.

처리기간이 이삼 일 되고 주로 오전중으로 열어놓고 주말에는 일을 하지 않으니 나미비아행 버스표를 살 때 일정을 잘 계산해야 한다.

여권사진이 두 장이 필요한데 사진이 모자라거나 급한 사람은 간단하게 스마트폰으로 만들어 현상할 수 있다. 흰색배경으로 안면사진을 찍어 폰의 어플로 아홉등분해서 한 장의 사진으로 만든다. 유에스비에 담아 롱스트릿에 있는 디지털 자가현상소에 가서 직접 프린트해서 잘라 사용한다. 총 비용 팔랜드에 아홉 장의 여권 사진을 확보했다.


롱스트릿의 카메라랜드에서 저렴하게 여권사진 제작.

# 이웃 나라 잠비아의 루사카에서 만들면 비용이 좀 더 들어간다.

여행하면서 이런 류의 비자를 만들 때마다 느낀 점은 적지 않은 비용으로 그들 나라를 여행하겠다는데 비자 담당자들의 태도는 어디서 똑같은 교육이라도 받은 듯이 한결 같이 고압적이고 건조하다. 그렇다고 거기서 일일이 따지기보단 이방인으로 그들의 땅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통과의례라고 생각하는게 정신 건강에 이로웠다.



2015년 9월 28일 월요일

자전거 타고 희망봉 가기 Riding bike to the Cape Point

20150918-20151015
Capetown in South Africa


때는 이 천년하고도 십오 년이 지나서 2015년 9월 26일, 길씨가 지구별에 살아온 지 만으로 정확히 오십 년째가 되는 날이다.
지구별 중에서도 한국이란 나라는 나이를 계산하는 방식이 남달라 태어날 때부터 기본 한 살을 공짜로 더해 준다.
여행하면서 여러 나라 친구들과 혹여 나이 얘기라도 할라치면 우리나라에서는 생명을 존중하여 태아때부터 계산한다고 비교적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들마냥 어떡하면 한 살이라도 빼볼량으로 그 마저도 달로 나누고 날짜로 쪼개서 만으로 꽉꽉 누르고 미루어 결국 쉰 살이 되는 날이 바로 이 날이다.
그깟 나이 한 살이 뮈그리 큰 대수냐고 묻는다면 지금 길씨의 나이는 우리나이로 따지면 쉰 둘이 되는데 그들에 비해 이 년의 시간이 다시 공짜로 더해진다.
길씨는 세상에 공짜는 절대 없다고 규정하고 인생의 좌우명마저 자업자득 인과응보를 넘어서 인과응분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우연히 또는 본의 아니게 다가왔던 행운은 항상 그의 인생에 보다 더 무거운 짐으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하물며 나이를  덤으로 준다는 데야.

그동안 여행하면서 생일날마다 특별히 기획하지 않아도 운좋게 다국적 여행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술판을 벌이며 맘껏 놀다뻗었다.
그러나 여기 케이프타운(Cape Town)의 Cats and Moose 호스텔에서 만났던 한국여행자와 일본 친구들이 며칠전에 모두 떠나버려 생일 전날은 달랑 혼자만 남게 되었다.
다행히 한국유학생에게 얻은 미역으로 현지날짜로 25일, 한국은 이미 26일이 되어버린 사십대의 마지막 날 저녁에 혼자 쇠고기 미역국을 맛나게 끓여 먹으며 남미에서부터 생각해왔던 계획을 실천하기로 했다.



나름 분위기 창출해보려고 블루투스 스피커로 한국가요를 들으며 셀카를 찍었다.
이런 청승.


국적불명의 김치꽁치 파스타 혼자 먹어도 엄청 맛있다.


케이프타운에서 희망봉까지 가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제일 쉬운 방법은 머무는 숙소나 여행사에서 소개하는 투어를 이용하는 것이고 그중에 가장 싼 바즈버스투어 가 현지 화폐로 일인당 최소 600랜드 이상 현재 환율로 우리돈으로 오만원 정도. 희망봉으로 가는 길에 물개섬이나 펭귄해변을 경유하면 약간의 비용이 추가된다.

그 다음으로 여러 명을 모을 수 있으면 차를 렌트해서 다닐 수 있다.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고 사람 수에 따라 투어보다 비용이 적게 들기도 한다.
다만 보험관계나 돌발사고에 대비해 기본약관을 잘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직접 찾아가는 방법으로 케이프타운에서 희망봉에 제일 인접한 도시인 사이먼스 타운(Simon's Town)까지 기차를 타고 간다.
역에서 나오면 바로 앞 도로에 희망봉까지 가는 봉고차 비슷한 빵차택시가 대기하고 있다.
문제는 혼자 가서 흥정을 잘못하면 투어보다 더 비싸게 바가지를 쓸 수도 있다.

이도저도 아니고 최저의 비용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단연 자전거를 타고 가는 방법이다.
자전거 대여는 사이먼스타운역에서 내려서 시내방향으로 걷다보면 대여소를 발견할 수 있다. 최근 대여시세를 알아보려 구글링을 통해 여러 사례를 검색해보니 대여비가 생각보단 싸지도 않고 심지어 대여소에 자전거가 없다는 정보도 있었다.

그래서 결론은 이 호스텔의 자전거를 렌트해서 가기로 했다.
가격은 120랜드, 기차에 자전거 탑재비 10랜드를 추가해도 사이먼스타운에서의 대여비 150랜드 보다 싸게 먹힌다.
인터넷으로 앞서 다녀온 사람들을 검색해보니 케이프타운에서 사이먼스타운까지 기차로 120분, 사이먼스역에서 희망봉까지 자전거로 넉넉하게 왕복 일곱 시간을 잡으면 될 것 같았다.
가능한 빨리 기차를 타고 가야 해가 지기전에 케이프타운에 돌아올 수 있다.
해진 후의 역주변은 낯선 여행자에게 위험하다.
우선 고려해야할 점은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사이먼스역에 내리자마자 그날의 케이프타운행 막차시간을 매표소에 가서 확인해야 한다.
주말이나 상황에 따라 막차 시간에 변동이 있을 수 있다.
보통의 경우 케이프타운행 막차가 여섯 시 반쯤에 끊긴다.

자, 길씨는 이렇게 거의 모든 정보를 체크한 뒤 뿌듯하게 포도주 한 잔으로 미리 생일을 자축하고 나서 내일의 장정을 위해 이날따라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해 뜨는대로 아침 여섯 시까지는 꼭 일어나야지.

바뜨 인생이란 아니 길씨의 삶이란 게 계획대로 된 적이 어디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평소보다 일찍 잔 게 화근이었나?
도미토리 숙소의 특성상 자정이 넘어서도 이래저래 잠을 깨우는 요소들이 많다.
새벽 두 시에 눈을 떠서 아무리 잠을 청해도 안되고 급기야 해뜰무렵 잠들어서 눈 뜨니 여덟 시가 훨씬 지났다.
부랴부랴 눈꼽만 떼고 어제 챙겨둔 배낭을 들쳐메고 자전거를 타고 기차역으로 달려갔다.



육인실 숙소의 이층침대 불 끄고 누우면 낮밤이 구분이 안된다.

앞으로 등장할 사진의 숙소은 '올드보이를 위한 배낭여행안내서' 중에 배낭여행자의 잠자리에 향후 소개 될 것입니다.


비몽사몽 매표소에서 표를 사서 플랫홈으로 달려가 마침 출발하려는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표는 메트로티켓과 메트로플러스, 두 가지 가격의 표가 있는데 같은 열차의 이등석과 일등석 개념이다. 아홉 시 반쯤 사이먼스타운을 향해 기차가 출발했다.



썰렁한 메트로플러스 내부, 중간쯤 지나서 표검사를 했다.

앞으로 등장할 사진속의 장비는 '올드보이를 위한 배낭여행안내서' 중에 배낭여행자의 장비에 향후 소개 될 것입니다.

기차는 순조롭게 희망봉을 향해 달리고 그때서야 길씨도 정신을 수습해서 싸구려 액션캠을 자전거 핸들바에 장착하고 어젯밤 배낭에 챙겨둔 토스트와 초코바로 아침을 떼우며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기차는 남쪽 해변을 따라 서핑으로 유명한 뮤젠버그(Muizenberg) 거쳐 사이먼스타운까지 간다.
수려한 해안선에 이어지는 창밖 풍경은 저멀리 언덕배기부터 안개가 자욱하고 간간히 비까지 뿌려 오늘 하루 자전거 여행이 순탄하지 만은 않아 보였다.
그렇게 잘가던 기차가 사이먼스타운을 세 정거장 앞둔 피쉬호크(Fish Hoek)역에서 멈춰 서서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엥, 멈춰선 지 근 오 분이 지났는데 이 느낌은 뭐지?
방금 탄 현지인에게 이 기차가 사이먼스타운까지 가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케이프타운을 간다네,
지금 케이프타운에서 오는 길인데 다시 거기로 간다는 게 말이 돼?
사이먼스타운으로 왜 안가냐고 재차 물었더니 친절하게도 역무원에게 데려다 줬다.
역앞을 지키는 역무원은 황급히 오라고 손짓을 했다.
자전거를 끌고 다가가니 역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서 방금 떠나려는 버스를 세우고 자전거부터 짐칸에 싣고 버스에 태운다.
길씨의 오늘 하루는 늦잠으로 시작해서 허겁지겁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야하는 찰나의 연속이었다.
자초지종은 이러하다.
아침 매표소에서 사이먼스타운에 가는 표를 달라고 했을 때 매표직원이 한참 영어로 뭐라 그래서 잠이 들 깬 상태라 비싼 표 살거냐고 묻는 줄 알고 아무거나 달라고 했다.
그 때 그녀가 했던 말은 이 기차가 현지 사정상 피쉬호크역 까지만가니까 거기 내려서 사이먼스타운으로 가는 셔틀버스로 갈아타란 말이었다.
그동안 중남미에서 에스파뇰에 길들여져 있기도 하고 여기 남아공의 영국식 악센트와 더치어가 혼합된 발음을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무엇보다도 이 아침의 혼미함이 문제였다.
항상 매표소에서 표를 살 때는 아무리 그 나라 언어에 능통해도 종이와 펜을 꺼내 날짜와 시간 좌석을 확인하는 것을 버릇처럼 해야한다. 

아무튼 이런 저런 우여곡절을 겪고 친절한 로칼의 도움으로 사이먼스타운 역에 도착했다.



피쉬호크역에서 갈아탄 셔틀버스, 사이먼스역에 데려다준다. 트렁크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다.




셔틀버스가 사이먼역 출구에 내려준다. 여기를 돌아서면 매표소와 케이프포인트 가는 빵차택시가 대기하고 있다.
막차시간 확인요.


그럼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희망봉을 향해 신나게 페달을 밟아보자, 라고 호기롭게 외쳤지만....

막차시간을 고려해 희망봉까지는 일단 쉼없이 달리기로 한다.
돌아올 때는 시간을 체크해보고 여유가 있으면 근처 유명한 바닷가에 들러 펭귄과 바다동물을 구경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이먼스 시내를 지나치자마자 가파르지는 않지만 오르막이 이어진다.
게다가 안개비가 계속 내려서 결국 자전거에서 내려 끌바를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해안을 따라 강하게 몰아치는 맞바람은 자전거를 끌고 가기도 힘들게 했다.



사이먼스타운을 지나면 나타나는 일반적인 해안도로. 도로는 희망봉까지 잘 닦여 있다.


자전거 끌바에 지쳐서 아름다운 풍경을 핑계로 사진 한 방 찍었고 한참을 쉬었다.


그래도 왕년엔 제주도와 대만 환도를 자전거로 완주 했고 가끔 나라마다 구간에 따라 자전거로 여행했는데 오늘은 초반부터 넘 힘들다.

해안도로가 끝날 쯤 케이프반도 내륙으로 도로가 나있고 조금 더 가면 케이프국립공원 입구가 나타난다.
매표소 앞에 표를 사기 위해 차들이 줄지어 있다.


다행히 자전거는 늘어선 차와 상관없이 바로 표를 사서 들어갈 수 있다.


성인 1인 입장료랑 자전거 1인1일 요금이 같다. 자전거 비용을 따로 받지 않네, 재수.

매표소를 통과하니 오랜만에 내리막길이 나타나 모처럼 시원하게 달려봤다.
다시 오르막길이 나오기 시작하고 길씨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두 갈래 길.

아래 지도를 참조해보면 일반적으로 희망봉이라 불리는 곳으로 케이프반도의 끝자락이 이어진 희망 곶(Cape)이다.
여기서 도로가 두 갈래로 나눠져 원래 희망봉이라 불리는 바닷가쪽의 희망곶(Cape of Good Hope)으로 가던지 등대와 기념시설 및 각종 위락시설이 있는 케이프포인트(Cape Point)를 갈 지를 결정해야 한다.
차를 가지고 왔다면 당연히 두 곳을 다녀올 수 있지만 시간이 촉박한 자전거 여행자는 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
아무래도 등대가 있는 높은 곳이 주변을 조망하기 좋아보여 케이프포인트 쪽을 선택하고 다른 쪽은 돌아올 때를 기약했다. 돌아갈 땐 훨씬 상황이 좋아져서 다른 쪽도 가보리라 기대를 했지만...
이미 예상한 왕복 여섯 시간의 반 이상을 소비했다.

드디어 케이프포인트(Cape Point) 등대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등대에서 바라본 풍경





멀리 희망봉이 보인다.

그리고 이 사진을 찍었다.


사실 희망봉과 아프리카는 길씨에게 처음은 아니다.
이미 십일 년 전에 이집트에서 남아공까지 동아프리카 종단여행을을 한 적이 있다.
지난 이 년동안 중남미 여행을 끝내고 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을 찾아온, 그리고 여기 희망봉까지 달려온 이유가 위의 사진속에 어설프게 색연필로 그려진 피켓에 써져 있다.

길씨의 마지막 꿈이자 미션이 될 수 있는 '끝에서 끝까지'라는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함이었다.
이 블로그 위의 소제목을 클릭하면 대략의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자,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는 길은 비바람이 더하다.




액션캠으로 찍은 동영상.

날씨는 험한데다 지나가는 차들로 도로끝선에 집중해서 달리느라 체력과 정신력이 두 배로 든다.
사이먼스역에 도착했을 때 막차 바로 전의 버스를 거의 슬라이딩 하듯이 탈 수 있었다.
다시 피쉬호크역에서 기차로 갈아탔을 때 길씨의 몸은 무한방전 되었지만 오늘 하루의 성취감으로 마음만은 완빵충전된 채 케이프타운까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지도참조



희망봉은 아프리카의 정확한 최남단은 아니지만 상징적으로 아프리카의 최남단으로 불리운다.
실제 아프리카 최남단은 아래 지도의 오른 쪽 끝인 아굴라스 곶이다.
포르투칼 항해사가 처음 이 곳을 발견했을 때는 폭풍을 만나 폭풍의 곶으로 불러다가 1498년 바스코다가마스가 인도항로를 개척하면서 희망의 의미를 담아 희망봉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희망봉의 의미가 그러하듯이 끝을 알 수 없는 이 여행이 누군가에게 심심한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되뇌이며 길씨의 또 하루가 지나갔다.


Riding bike to the Cape Point


I went to Cape Point on 26th Sep. It was really crazy weather to ride bicycle. There were rain and wind and fog. I spent all day so I ache all over now. Anyway I arrived in Cape point and I took this photo. It is that very day since I have lived for 50 years on earth. I made small banner even that is very poor banner. As you guys can see, I got started traveling from the end to the end without flight. Busan is the end city of far East Asia. I know a lot of problem to cross border every single country. But I sincerely believe we are the same people of Earth on this planet. Even if I will be failed, that is also my destiny. No more thinking. Stop thinking. I just travel to travel like breathing air. That is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