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September 28, 2015

자전거 타고 희망봉 가기 Riding bike to the Cape Point

20150918-20151015
Capetown in South Africa


때는 이 천년하고도 십오 년이 지나서 2015년 9월 26일, 길씨가 지구별에 살아온 지 만으로 정확히 오십 년째가 되는 날이다.
지구별 중에서도 한국이란 나라는 나이를 계산하는 방식이 남달라 태어날 때부터 기본 한 살을 공짜로 더해 준다.
여행하면서 여러 나라 친구들과 혹여 나이 얘기라도 할라치면 우리나라에서는 생명을 존중하여 태아때부터 계산한다고 비교적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들마냥 어떡하면 한 살이라도 빼볼량으로 그 마저도 달로 나누고 날짜로 쪼개서 만으로 꽉꽉 누르고 미루어 결국 쉰 살이 되는 날이 바로 이 날이다.
그깟 나이 한 살이 뮈그리 큰 대수냐고 묻는다면 지금 길씨의 나이는 우리나이로 따지면 쉰 둘이 되는데 그들에 비해 이 년의 시간이 다시 공짜로 더해진다.
길씨는 세상에 공짜는 절대 없다고 규정하고 인생의 좌우명마저 자업자득 인과응보를 넘어서 인과응분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우연히 또는 본의 아니게 다가왔던 행운은 항상 그의 인생에 보다 더 무거운 짐으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하물며 나이를  덤으로 준다는 데야.

그동안 여행하면서 생일날마다 특별히 기획하지 않아도 운좋게 다국적 여행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술판을 벌이며 맘껏 놀다뻗었다.
그러나 여기 케이프타운(Cape Town)의 Cats and Moose 호스텔에서 만났던 한국여행자와 일본 친구들이 며칠전에 모두 떠나버려 생일 전날은 달랑 혼자만 남게 되었다.
다행히 한국유학생에게 얻은 미역으로 현지날짜로 25일, 한국은 이미 26일이 되어버린 사십대의 마지막 날 저녁에 혼자 쇠고기 미역국을 맛나게 끓여 먹으며 남미에서부터 생각해왔던 계획을 실천하기로 했다.



나름 분위기 창출해보려고 블루투스 스피커로 한국가요를 들으며 셀카를 찍었다.
이런 청승.


국적불명의 김치꽁치 파스타 혼자 먹어도 엄청 맛있다.


케이프타운에서 희망봉까지 가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제일 쉬운 방법은 머무는 숙소나 여행사에서 소개하는 투어를 이용하는 것이고 그중에 가장 싼 바즈버스투어 가 현지 화폐로 일인당 최소 600랜드 이상 현재 환율로 우리돈으로 오만원 정도. 희망봉으로 가는 길에 물개섬이나 펭귄해변을 경유하면 약간의 비용이 추가된다.

그 다음으로 여러 명을 모을 수 있으면 차를 렌트해서 다닐 수 있다.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고 사람 수에 따라 투어보다 비용이 적게 들기도 한다.
다만 보험관계나 돌발사고에 대비해 기본약관을 잘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직접 찾아가는 방법으로 케이프타운에서 희망봉에 제일 인접한 도시인 사이먼스 타운(Simon's Town)까지 기차를 타고 간다.
역에서 나오면 바로 앞 도로에 희망봉까지 가는 봉고차 비슷한 빵차택시가 대기하고 있다.
문제는 혼자 가서 흥정을 잘못하면 투어보다 더 비싸게 바가지를 쓸 수도 있다.

이도저도 아니고 최저의 비용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단연 자전거를 타고 가는 방법이다.
자전거 대여는 사이먼스타운역에서 내려서 시내방향으로 걷다보면 대여소를 발견할 수 있다. 최근 대여시세를 알아보려 구글링을 통해 여러 사례를 검색해보니 대여비가 생각보단 싸지도 않고 심지어 대여소에 자전거가 없다는 정보도 있었다.

그래서 결론은 이 호스텔의 자전거를 렌트해서 가기로 했다.
가격은 120랜드, 기차에 자전거 탑재비 10랜드를 추가해도 사이먼스타운에서의 대여비 150랜드 보다 싸게 먹힌다.
인터넷으로 앞서 다녀온 사람들을 검색해보니 케이프타운에서 사이먼스타운까지 기차로 120분, 사이먼스역에서 희망봉까지 자전거로 넉넉하게 왕복 일곱 시간을 잡으면 될 것 같았다.
가능한 빨리 기차를 타고 가야 해가 지기전에 케이프타운에 돌아올 수 있다.
해진 후의 역주변은 낯선 여행자에게 위험하다.
우선 고려해야할 점은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사이먼스역에 내리자마자 그날의 케이프타운행 막차시간을 매표소에 가서 확인해야 한다.
주말이나 상황에 따라 막차 시간에 변동이 있을 수 있다.
보통의 경우 케이프타운행 막차가 여섯 시 반쯤에 끊긴다.

자, 길씨는 이렇게 거의 모든 정보를 체크한 뒤 뿌듯하게 포도주 한 잔으로 미리 생일을 자축하고 나서 내일의 장정을 위해 이날따라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해 뜨는대로 아침 여섯 시까지는 꼭 일어나야지.

바뜨 인생이란 아니 길씨의 삶이란 게 계획대로 된 적이 어디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평소보다 일찍 잔 게 화근이었나?
도미토리 숙소의 특성상 자정이 넘어서도 이래저래 잠을 깨우는 요소들이 많다.
새벽 두 시에 눈을 떠서 아무리 잠을 청해도 안되고 급기야 해뜰무렵 잠들어서 눈 뜨니 여덟 시가 훨씬 지났다.
부랴부랴 눈꼽만 떼고 어제 챙겨둔 배낭을 들쳐메고 자전거를 타고 기차역으로 달려갔다.



육인실 숙소의 이층침대 불 끄고 누우면 낮밤이 구분이 안된다.

앞으로 등장할 사진의 숙소은 '올드보이를 위한 배낭여행안내서' 중에 배낭여행자의 잠자리에 향후 소개 될 것입니다.


비몽사몽 매표소에서 표를 사서 플랫홈으로 달려가 마침 출발하려는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표는 메트로티켓과 메트로플러스, 두 가지 가격의 표가 있는데 같은 열차의 이등석과 일등석 개념이다. 아홉 시 반쯤 사이먼스타운을 향해 기차가 출발했다.



썰렁한 메트로플러스 내부, 중간쯤 지나서 표검사를 했다.

앞으로 등장할 사진속의 장비는 '올드보이를 위한 배낭여행안내서' 중에 배낭여행자의 장비에 향후 소개 될 것입니다.

기차는 순조롭게 희망봉을 향해 달리고 그때서야 길씨도 정신을 수습해서 싸구려 액션캠을 자전거 핸들바에 장착하고 어젯밤 배낭에 챙겨둔 토스트와 초코바로 아침을 떼우며 차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기차는 남쪽 해변을 따라 서핑으로 유명한 뮤젠버그(Muizenberg) 거쳐 사이먼스타운까지 간다.
수려한 해안선에 이어지는 창밖 풍경은 저멀리 언덕배기부터 안개가 자욱하고 간간히 비까지 뿌려 오늘 하루 자전거 여행이 순탄하지 만은 않아 보였다.
그렇게 잘가던 기차가 사이먼스타운을 세 정거장 앞둔 피쉬호크(Fish Hoek)역에서 멈춰 서서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엥, 멈춰선 지 근 오 분이 지났는데 이 느낌은 뭐지?
방금 탄 현지인에게 이 기차가 사이먼스타운까지 가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케이프타운을 간다네,
지금 케이프타운에서 오는 길인데 다시 거기로 간다는 게 말이 돼?
사이먼스타운으로 왜 안가냐고 재차 물었더니 친절하게도 역무원에게 데려다 줬다.
역앞을 지키는 역무원은 황급히 오라고 손짓을 했다.
자전거를 끌고 다가가니 역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서 방금 떠나려는 버스를 세우고 자전거부터 짐칸에 싣고 버스에 태운다.
길씨의 오늘 하루는 늦잠으로 시작해서 허겁지겁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야하는 찰나의 연속이었다.
자초지종은 이러하다.
아침 매표소에서 사이먼스타운에 가는 표를 달라고 했을 때 매표직원이 한참 영어로 뭐라 그래서 잠이 들 깬 상태라 비싼 표 살거냐고 묻는 줄 알고 아무거나 달라고 했다.
그 때 그녀가 했던 말은 이 기차가 현지 사정상 피쉬호크역 까지만가니까 거기 내려서 사이먼스타운으로 가는 셔틀버스로 갈아타란 말이었다.
그동안 중남미에서 에스파뇰에 길들여져 있기도 하고 여기 남아공의 영국식 악센트와 더치어가 혼합된 발음을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무엇보다도 이 아침의 혼미함이 문제였다.
항상 매표소에서 표를 살 때는 아무리 그 나라 언어에 능통해도 종이와 펜을 꺼내 날짜와 시간 좌석을 확인하는 것을 버릇처럼 해야한다. 

아무튼 이런 저런 우여곡절을 겪고 친절한 로칼의 도움으로 사이먼스타운 역에 도착했다.



피쉬호크역에서 갈아탄 셔틀버스, 사이먼스역에 데려다준다. 트렁크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다.




셔틀버스가 사이먼역 출구에 내려준다. 여기를 돌아서면 매표소와 케이프포인트 가는 빵차택시가 대기하고 있다.
막차시간 확인요.


그럼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희망봉을 향해 신나게 페달을 밟아보자, 라고 호기롭게 외쳤지만....

막차시간을 고려해 희망봉까지는 일단 쉼없이 달리기로 한다.
돌아올 때는 시간을 체크해보고 여유가 있으면 근처 유명한 바닷가에 들러 펭귄과 바다동물을 구경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이먼스 시내를 지나치자마자 가파르지는 않지만 오르막이 이어진다.
게다가 안개비가 계속 내려서 결국 자전거에서 내려 끌바를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해안을 따라 강하게 몰아치는 맞바람은 자전거를 끌고 가기도 힘들게 했다.



사이먼스타운을 지나면 나타나는 일반적인 해안도로. 도로는 희망봉까지 잘 닦여 있다.


자전거 끌바에 지쳐서 아름다운 풍경을 핑계로 사진 한 방 찍었고 한참을 쉬었다.


그래도 왕년엔 제주도와 대만 환도를 자전거로 완주 했고 가끔 나라마다 구간에 따라 자전거로 여행했는데 오늘은 초반부터 넘 힘들다.

해안도로가 끝날 쯤 케이프반도 내륙으로 도로가 나있고 조금 더 가면 케이프국립공원 입구가 나타난다.
매표소 앞에 표를 사기 위해 차들이 줄지어 있다.


다행히 자전거는 늘어선 차와 상관없이 바로 표를 사서 들어갈 수 있다.


성인 1인 입장료랑 자전거 1인1일 요금이 같다. 자전거 비용을 따로 받지 않네, 재수.

매표소를 통과하니 오랜만에 내리막길이 나타나 모처럼 시원하게 달려봤다.
다시 오르막길이 나오기 시작하고 길씨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두 갈래 길.

아래 지도를 참조해보면 일반적으로 희망봉이라 불리는 곳으로 케이프반도의 끝자락이 이어진 희망 곶(Cape)이다.
여기서 도로가 두 갈래로 나눠져 원래 희망봉이라 불리는 바닷가쪽의 희망곶(Cape of Good Hope)으로 가던지 등대와 기념시설 및 각종 위락시설이 있는 케이프포인트(Cape Point)를 갈 지를 결정해야 한다.
차를 가지고 왔다면 당연히 두 곳을 다녀올 수 있지만 시간이 촉박한 자전거 여행자는 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
아무래도 등대가 있는 높은 곳이 주변을 조망하기 좋아보여 케이프포인트 쪽을 선택하고 다른 쪽은 돌아올 때를 기약했다. 돌아갈 땐 훨씬 상황이 좋아져서 다른 쪽도 가보리라 기대를 했지만...
이미 예상한 왕복 여섯 시간의 반 이상을 소비했다.

드디어 케이프포인트(Cape Point) 등대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등대에서 바라본 풍경





멀리 희망봉이 보인다.

그리고 이 사진을 찍었다.


사실 희망봉과 아프리카는 길씨에게 처음은 아니다.
이미 십일 년 전에 이집트에서 남아공까지 동아프리카 종단여행을을 한 적이 있다.
지난 이 년동안 중남미 여행을 끝내고 아프리카 케이프타운을 찾아온, 그리고 여기 희망봉까지 달려온 이유가 위의 사진속에 어설프게 색연필로 그려진 피켓에 써져 있다.

길씨의 마지막 꿈이자 미션이 될 수 있는 '끝에서 끝까지'라는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함이었다.
이 블로그 위의 소제목을 클릭하면 대략의 계획을 알 수 있습니다.


자,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는 길은 비바람이 더하다.




액션캠으로 찍은 동영상.

날씨는 험한데다 지나가는 차들로 도로끝선에 집중해서 달리느라 체력과 정신력이 두 배로 든다.
사이먼스역에 도착했을 때 막차 바로 전의 버스를 거의 슬라이딩 하듯이 탈 수 있었다.
다시 피쉬호크역에서 기차로 갈아탔을 때 길씨의 몸은 무한방전 되었지만 오늘 하루의 성취감으로 마음만은 완빵충전된 채 케이프타운까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지도참조



희망봉은 아프리카의 정확한 최남단은 아니지만 상징적으로 아프리카의 최남단으로 불리운다.
실제 아프리카 최남단은 아래 지도의 오른 쪽 끝인 아굴라스 곶이다.
포르투칼 항해사가 처음 이 곳을 발견했을 때는 폭풍을 만나 폭풍의 곶으로 불러다가 1498년 바스코다가마스가 인도항로를 개척하면서 희망의 의미를 담아 희망봉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희망봉의 의미가 그러하듯이 끝을 알 수 없는 이 여행이 누군가에게 심심한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되뇌이며 길씨의 또 하루가 지나갔다.


Riding bike to the Cape Point


I went to Cape Point on 26th Sep. It was really crazy weather to ride bicycle. There were rain and wind and fog. I spent all day so I ache all over now. Anyway I arrived in Cape point and I took this photo. It is that very day since I have lived for 50 years on earth. I made small banner even that is very poor banner. As you guys can see, I got started traveling from the end to the end without flight. Busan is the end city of far East Asia. I know a lot of problem to cross border every single country. But I sincerely believe we are the same people of Earth on this planet. Even if I will be failed, that is also my destiny. No more thinking. Stop thinking. I just travel to travel like breathing air. That is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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