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April 1, 2017

배낭여행자의 안전 Backpacker's safety

개봉박두

Coming soon


올드보이를 위한 배낭여행서

Backpacker's guide for Old Boy


배낭여행 각론

1 배낭여행자의 안전 Backpacker's safety

2 배낭여행자의 숙소 Backpacker's place to stay

3 배낭여행자의 언어 Backpacker's Language

4 배낭여행자의 음식 Backpacker's food

5 배낭여행자의 장비 Backpacker' gear

6 배낭여행자의 만남 Backpacker's meeting

7 배낭여행자의 놀이 Backpacker's activity

8 배낭여행자의 운명 Backpacker's destiny

9 배낭여행자의 글쓰기 Backpacker's posting



맛보기


Tasting Chapter


1 배낭여행자의 안전 Backpacker's safety



여행에서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Tourist cannot be too careful in traveling.


학창시절 영어공부를 할 때 무조건 달달 외웠던 문장 패턴이 있다.

cannot ~ too ~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기에서 누구에게 무엇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말일까?

여행자모드로 전환하면 누구는 여행자이고 무엇은 안전이 된다.

그러면 누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여행을 많이 한 사람의 경험치를 통해 여행의 안전에 대해 이야기 되어지는 게 보다 신뢰가 간다.

그러나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안전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여행의 안전에 대하여 얼마든지 말을 할 수 있다.

말인즉슨 여행에 있어 안전수칙이란 게 상황에 따라 경우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일상의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안전수칙을 준수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실제로 배낭여행을 하다보면 누구나 위험하다고 하는 곳에서는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보내고 모두들 안전하다고 하는 곳에서 어이 없이 큰일을 당하기도 한다.

이러니 초보여행자는 어느 장단에 맞춰 안전한 여행지를 선택해야할 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이불 밖은 위험해’라고 외치며 베개를 벗 삼아 침대에서 뒹굴며 여행을 할 수는 없다.
농으로 세상에서 제일 많은 사람이 죽은 장소가 침대라고 하더라.

결국 세상 어디에도 절대적으로 안전한 곳은 없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위험에 노출된다는 운명론적 귀결이 된다.

이쯤에서 이건 뭐 여행을 해라는 건지 하지 말라는 것인지 더 헷갈리게 된다.

이천 년 이후 거의 해마다 한 달 이상 해외로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안전여행을 위한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먼저 세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하나, 상식적으로 여행하자.

상식의 선에서 스스로 원칙을 세우고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이다.

우리 나이로 마흔에 시작한 늦깎이 배낭여행이라 과도한 밤 문화를 쫓아가는 여행은 되도록이면 피해 다녔다.
나이 들어 배낭까지 메고 추하게 남의 나라 유곽주위를 기웃거리고 싶지 않았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최소한 이 말은 듣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

그렇다고 각국의 밤 문화를 무시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유명한 세계맥주기행이나 값싸고 질이 좋은 포도주가 각 대륙마다 널려있는데 어찌 이들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현지인과 함께 그 나라 고유의 토속주를 마시며 청춘 배낭동지들과 밤새워 열정을 불태우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여행의 즐거움이다.

단지 국내법에 저촉되는 과한 유흥과 향락을 나라밖에 나가서까지 하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이렇게 세운 원칙이 벌써 십여 년이 지나니 이제는 이 기록을 깨기가 아까워서 계속 지켜 나가고 있다.

혹시 이 책의 제목이 ‘올드보이를 위한 배낭여행 안내서’라고 되어 있어 중년남성을 위한 밤 문화 가이드쯤으로 알고 특별히 야릇한 정보라도 있을까하고 기대했다면 심심한 위로를 드리는 바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상식의 선에서 여행을 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굳이 여행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처럼 가장 보편적인 규범을 지키는 것이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낮에는 다니고 밤에는 잔다는 이런 보편적 수준의 생활방식부터 내가 싫어하는 것은 남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도덕률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가끔 상식의 선이 애매모호할 때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분명 상식인데 다른 나라에서는 비상식이 되는 경우이다.

처음 가는 낯선 나라를 방문할 때는 미리 그 나라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나라마다 다른 고유의 문화를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특이한 풍속을 가진 나라를 살펴보면 동남 아시아권은 비교적 우리와 비슷하다고 보고 유럽과 미주 지역은 여러 매체를 통해 어느 정도는 익숙해져 있다.

아프리카의 원시부족은 우리의 민속촌처럼 관광객을 위한 전시형태로 남아 있어 평소에 그들만의 고유 풍속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원시부족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아마존이나 중남미의 원시림에 생존하는 야생의 부족은 일반인이 접근하기는 쉽지가 않다.

남은 지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일대의 무슬림 지역인데 아무래도 이 지역을 여행하려면 주변 정세에 민감해야하고 무슬림 문화권에 대한 편견 없는 이해력이 필요하다.

무슬림 지역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남녀 간의 풍습이다.
같은 무슬림 나라라도 터키처럼 여성의 의상에 자유로운 곳도 있고 바로 옆 나라 이란은 여성에게 머리에 두르는 희잡을 여전히 강요하고 있다.
중동의 강성인 이슬람 국가로 갈수록 여성의 신체노출에 대해 더욱 가혹하다.
한 번은 엄격한 이슬람 사원 앞에서 온몸이 드러나는 옷을 입은 채 담배를 꼬나물고 있는 여행자를 본 적이 있는데 도대체 어떤 통뼈를 삶아 잡수시고 그렇게 용기탱천한 지 물어보고 싶었다.

아무튼 이런 지역을 여행하기 전에 무슬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공부해 두는 게 바람직하다.

외교부 사이트(www.0404.go.kr)의 해외안전여행에서 각 나라별 여행경보 발령현황을 볼 수 있다.

다행히도 아주 비상식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는 예를 들어 여성할례나 노예시장이 여전히 존재하는 나라는 여행금지국가로 분류되어 있어 평범한 배낭여행자는 입국 자체가 안 된다.

이래저래 위험한 지역을 제외하고 나니 특별난 요령 없는 기본 상식이 되어 버렸다.

위의 지역들은 여행하려면 여행을 떠나기 전에 미리미리 학습을 통한 인문적 교양을 넓혀감으로써 이종문화에 대한 편견 없는 이해력을 길러야한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낯선 여행지에서 현지인과 현지문화를 존중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행이란 것이 정해진 길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보다 의미 있는 여행이 되려면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존감이 지나쳐 자만심으로 변질되고 항상 비교 우위적으로 현지문화를 무시하려는 여행자들이 있다.

소위 꼰대라고 불리는 올드보이에게 이런 자기 과시적 자만심이 많이 나타난다.

자신은 어디를 가도 대접을 받는다고 착각하고 다니다 상대방의 반응이 맘에 들지 않거나 시원치 않으며 그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한다.

`이러니 이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에 못 사는 거야.` 이런 말들을 서슴지 않고 그들 면전에서 하고 심지어 주변까지 가르치려고 든다.

현지인들이 못 알아 들었기 망정인지 너희 나라는 언제부터 그렇게 잘 살게 되었냐고 되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런 지?

솔직히 말하면 이들이 대접을 받을 때는 잘해야 딱 그가 쓴 돈만큼 이거나 그 보다 못하다고 보면 된다.

또 하나 자기 상식만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여행을 어렵게 하고 같이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아프리카 여행 중에 신사의 나라라고 불리는 곳에서 온 여행자답게 꽤 점잖은 풍모의 나이 지긋한 올드보이와 같은 호스텔의 도미토리에서 지내던 때가 있었다.

다인실인 도미토리의 특성상 잠을 설치게 하는 요소가 많이 있다.

한 방에 한두 명은 코를 골고 어떤 이는 밤새 들락날락거리며 문을 여닫기도 하고 여하튼 정체 모를 소음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 어르신께서는 이런 소음에 몹시 민감해서 아침이 되면 지난밤의 소음에 대해 꼭 불평불만을 터트렸다.

배낭여행을 하면서 일인실을 사용하지 않고 여러 사람이 함께 머무는 다인실을 선택했다면 이와 같은 소음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올드보이와 함께 현지인들로 만원이 된 미니버스를 같이 타고 가는데 그의 옆자리에 앉은 아프리카 사람이 큰 소리로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것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예의에 어긋난 일이다.

그러나 아프리카나 제삼세계의 몇몇 나라를 여행하다보면 귀가 떨어져 나갈듯한 음악을 틀어놓아도 누구하나 불평을 하지 않고 이상하리만큼 소음에 둔감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역시 이 미니버스안의 승객들도 이 정도의 통화소음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 올드보이께서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갑자기 병아리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마치 입으로 비트박스를 연주하듯이 통화가 끝날 때까지 통화음에 라임을 맞춰 삐약삐약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낸다.

통화를 끝낸 현지인은 이 올드보이에게 불같이 화를 퍼부었다.

하얀 피부를 가진 외지인이 아프리카 사람을 무시하는 거냐고 피부색깔까지 들먹이니까 버스안의 다른 승객들마저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이 영감님은 상황 판단을 못한 채 오히려 한마디도 지지 않고 공공예절을 지키라며 학교 선생님처럼 훈계까지 하신다.

버스안의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같이 버스를 타고 가는 죄로 그 할아버지의 일행으로 취급되어 이대로 가다간 승객들에게 둘러싸여 신변의 위협이 올 것만 같았다.

버스가 정류장에 서자마자 재빨리 상황을 판단하고 그 영감을 억지로 끄집어내려 일단은 위험 상황을 모면했다.

그때까지도 이 올드보이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지 못하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이미 그의 상식은 아니 그의 사고는 이런 상황을 해석해내기에는 힘들 정도로 굳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는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있고 불행히도 그 곳에선 그 정도의 소음은 상식적이라는 것을....

어느 영화 제목처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게다가 자신만의 습성에 길들여진 올드보이에게 관대한 나라는 더더욱 없다.

보통의 경우 나이가 들면 청력이 약해지는 노인성 난청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 영감님의 경우 노화에 역행해서 오히려 소리에 매우 민감했던 모양이다.

이 사례를 보면 노화라는 것이 꼭 신체적인 것만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신체적 노화가 진행되는 것은 받아들여야할 서러운 현실이지만 이와 더불어 정신적으로 사고가 굳어져 가는 것이 더욱더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올드보이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때 세상은 그를 꼰대라고 부른다.

정신적으로 나타나는 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상대방의 얘기는 들리지 않고 자기가 하고픈 말만 계속하며 자신의 상식만이 옳다고 고집하는 것이다.

여행이 열린 만남과 새로운 배움의 장이 되어야하는데 오히려 여행이 계속될수록 그가 만든 도덕률의 잣대로 세상을 판단하고 자신의 우월함을 대견해하며 즐기기까지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날 지구별 한 구석에서 주변에 아무도 없는 외로운 뒷방 늙은이가 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안타깝지만 요즘은 젊은 친구들 중에도 남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자기말만 하는 이들이 자주 보인다.

말을 줄이고 상대방에 귀를 기울이며 가끔은 자기 생각이 맞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노화를 방지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지름길이다.


위의 올드보이의 사례는 자신의 상식과 상대방의 상식이 충돌한 경우이다.

이럴 경우 현지인의 상식에 따르는 것이 모든 면에서 유리하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되지 않겠는가?


다음은 상대방의 비상식이 위협이 되는 사례를 들어 보겠다.

`동양인은 다 차이니즈이다.`

분명 옳은 명제가 아니고 누가 들어도 비상식적인 말이다.
그러나 중남미나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동양인은 거의 차이니즈라고 불린다.

남미에는 에스파뇰로 치노라고 하고 영어권에는 차이니즈 또는 지들 부르고 싶은 데로 ‘칭창총’ 등 가지가지 애칭(?)이 다양하게 있다.

처음 세계여행을 했을 때는 차이니즈가 아니라 코리아라고 일일이 답하고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에 있는 지까지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러다 남미를 여행하면서 치노라고 하는 말이 동양인을 비하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인과 인도인은 세계 어디를 가도 차이나타운과 리틀인디아 같은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한다.

특히 중국 사람들은 이민 초창기에 생고생을 하며 밑바닥에서 힘들고 어렵게 살았는데 그 때문인지 차이니즈는 동양인을 무시할 때 쓰는 대명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옛날의 중국이 아니다.
경제 규모로만 보면 미국과 맞장 뜨는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로 발전했지만 여전히 그런 의미로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한국에도 중국인들을 비하하는 `짱`이나 `뗏`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있긴 하다.
이런 말을 상용하는 자들은 상대방의 대답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러니 아무리 차이니즈가 아니라 코리아라고 해도 쇠귀에 경읽기가 된다.


중미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날은 한국여행자랑 같이 길을 걷고 있었는데 동네 달건이로 보이는 한 명이 우리를 보며 치노라 부르면 낄낄 댄다.
같이 가던 친구가, 그 친구도 여행경력이 꽤나 됐는데 하필 그날은 참지 못하고 치노가 아니라 코리아노라고 약간의 언성을 높였다.
그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주변에 있던 동네 양아치들이 다 같이 일어났다.

알고 보니 처음 치노라고 부른 놈은 술에 쩔어 있었고 주변 놈들은 약을 했는지 상태가 메롱이었다.
똥개도 자기 동네에서 80프로는 먹어준다.
순간 위험을 감지하고 지나가는 버스에 얼른 올라탔는데 그중 네 명이 같은 버스에 따라왔다.
다행히 썰전과 가벼운 신체접촉으로 끝나긴 했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하다.
이 나라는 세계에서 살인율 순위로 항상 탑5에 들어가는 도시를 보유하고 있다.
만약 그들이 총이나 칼을 가졌으면... 생각하기도 싫다.

정답은 캐무시.
특정동물을 비하하기 싫어서 무시 앞에 캐를 붙였다.
다소 표현이 과격하지만 이와 같은 비상식적 행위는 반응하지 않고 조용히 피해 가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
뭐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듯이.

그들이 차이니즈라고 부를 때는 친절히 코리아라고 가르쳐 달라고 부른 게 아니다.
단지 그들이 그렇게 부르고 싶어서 부른 것인데 거기다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요.`라고 일일이 부연설명 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위의 두 사례가 된 나라를 특정하지 않은 이유는 이 같은 경우가 아프리카나 중남미의 어느 나라에서나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남미에서는 예전보다 치노라고 부르는 소리를 훨씬 적게 들었다.

하나 더, 그럼 진짜 중국인들은 치노라고 부르면 어떤 느낌과 반응을 하는지 궁금했다.
중남미에는 중국인 배낭여행자가 거의 없어서 남미에서 현지화 된 중국인에게 넌지시 물어 보았다.
치노라는 소리를 들을 때는 비하해서 하는 말인지 정말 중국인 친구라서 부른 건지 느낄 수 있고 웬만하면 좋은 쪽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하기야 치노를 치노라고 부르는데 틀렸다고 할 수 없고 아무튼 그들의 대국적인 마인드가 새삼 부러웠다.
실제로 치노를 예전처럼 놀림감의 대상이란 의미보다 요즘은 단순히 동양인 친구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다시 찾은 아프리카에서 차이니즈란 소리가 남미보다 훨씬 많이 들렸다.

그토록 내공을 닦아 캐무시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한 번씩은 심하게 귀에 거슬릴 때가 있다. 아프리카인에게서 동양인을 무시하는 역차별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제법 있다.
같은 유색인종이고 그들 또한 피부색을 이유로 백인들에게 박해받고 살았는데 아직도 백인들과 동양인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아프리카 사람들이 있다.

서양인들에겐 여전히 깍듯하고 제일 만만한 동양인을 통칭해서 차이니즈라고 부르는 것이다.

어쩌다 동네꼬맹이한테도 놀림감이 되면 세상에서 가장 차별 받는 인간은 나이 들고 키 작은 동양남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역차별이라고 쓴 것도 아프리카인에 대한 편견이 들어간 말이다.
아프리카에서 차이니즈란 소리를 듣고 필요이상의 흥분과 분노를 느낄 때는 그들이 백인들에게 무시당했던 흑인이라서가 아닌 지 자문해 보자.

사실 우리네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배고픈 동네 아이들끼리 미군 부대 근처로 놀러가서 초콜렛이나 껌이라도 하나 얻을까하고 지나가는 미군마다 `기브미 초콜렛또 츄잉껌`하며 말도 안 되는 영어로 부대에서 나오는 미군에게 생떼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아무 소득이 없으면 바로 안면을 바꿔 양코백이 노랭이 팍큐라고 소리치며 주먹감자를 날리고 내빼곤 했다.

동유럽 쪽을 여행하다보면 집시의 아이들이나 정부로부터 방치된 부랑아들이 다짜고짜로 여행자에게 다가와서 돈을 요구하고 거부하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욕을 해대고 침까지 뱉고 간다.

우리가 어린 시절에 낯선 이방인에게 했던 것처럼....

따지고 보면 나와 다른 낯선 사람들에게 적의를 드러내고 비하하거나 멸시하는 호칭을 사용하는 이런 일련의 행위 모두가 인종차별에 해당된다.
그러나 상대가 아이들이라 성질대로 쥐어박을 수도 없고 그냥 꾹 참고 지나간다.

외부인에 대한 이러한 비상식적 행위는 아픈 역사가 만들어낸 가난과 그들 정부로부터 기본적인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무지에서 기인한다.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서구열강이 그들 편의대로 막대자로 죽죽 그어 만든 국경이 지금까지 그대로 식민지배의 상흔으로 남아 있다.
그들로부터 독립한 후에도 종족분쟁의 대학살과 이념 및 종교 갈등까지 겪고도 여전히 어느 독재자의 장기집권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머지않은 과거에 우리도 그들처럼 그랬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상기하며 측은지심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도 우리처럼 좀 더 나은 환경과 기회가 주어져서 언젠가는 낯선 이의 방문을 드넓게 포용해주길 기대한다.


반대로 자신의 비상식이 안전을 위협하는 경우인데 이거야 말로 예를 들 필요도 없이 비상식적으로 여행하지 않으면 된다.

상식은 상식인데 여기까지가 상식이고 여기부턴 상식이 아니고를 제시하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고 자신의 상식이 남에게는 비상식이 될 수가 있어 첫 번째 원칙은 상식의 선에서 마무리한다.

비록 확실한 안전 요령을 제시하지 못했지만 여행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상식적인 사람인가를 적나라하게 깨닫게 될 것이다.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제발 상식적으로 여행하자.




두 번째는

위험요소를 최대한 줄인다.

첫 번째 원칙은 애매한 상식선에서 끝났지만 두 번째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안전여행을 지속하는데 아주 요긴하다.

위험요소를 줄이는 몇 가지 요령을 소개하면

절대 튀지 마라.

경찰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나라에서 최신 스마트폰을 한 손에 들고 카메라와 고가의 전자 장비를 주렁주렁 달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날 잡아 드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런 고가의 품목들은 치안이 비교적 안정적인 나라에서도 쥐도 새도 모르게 소매치기의 제물이 되는데 하물며 노상강도나 권총강도가 출몰하는 나라에서 의외로 이러고 다니는 사람들이 왕왕 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고가의 제품이라도 언뜻 봐서는 비싼 튀가 나지 않은 것으로 옷차림 또한 나름 수수하게 입고 다니는데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그런 것만 쏙 빼간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고도 필요에 의해 고가의 장비를 가지고 다니려면 항상 주변을 살피고 지닌 물품을 수시로 확인하는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니까 여행의 반 이상을 소지품을 관리하는데 소비해야 되는 것이다.
고가 여행 장비의 개수와 얼마나 자유로운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지의 함수관계는 항상 반비례한다.

이 모든 노력을 경주했지만 어느 날 한순간에 나의 소중한 것들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추억과 함께 아스라이 사라지곤 했다.

아무리 아름답고 좋은 나라를 여행하다가도 귀중품 도난이나 강도 사고를 당하면 여행할 맛이 뚝 떨어지고 연이어 한 방 더 맞으며 바로 짐 싸서 귀국하고 싶어진다.


그럼 도대체 어떡하란 말이냐?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비싼 것을 지니고 다니지 않으면 된다.

설령 그것들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떠나가더라도 조금은 덜 아프기 때문이다.

한참 얘기하다보니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되었다.

귀중품은 어떻게 여행자보험으로 처리하더라도 억만금을 줘도 다시는 살 수 없는 카메라에 저장된 사진들은 어떻게 하나?

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아래 여행실전에서 한 올드보이의 구질구질하지만 가장 실용적인 여행팁을 통해 자세히 공개하겠다.


다음은 이동시에 유의해야 할 사항이다.

장거리 야간버스나 기차를 타고 낯선 도시의 새벽에 도착했을 때는 웬만하면 터미널 대합실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 날 샐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침이 밝아온 뒤에도 거리의 정상적인 사람들의 행렬을 확인하고 터미널 밖으로 나와서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

특히 새벽 시간에 혼자 터미널 밖으로 나와서 아무 택시나 잡아타고 가는 것은 절대로 삼가해야한다.
목숨까지 위협당한 여행자들로부터 직접 들은 택시강도의 빈도수가 제일 많은 때는 새벽시간대였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는 말할 것도 없고 대낮에도 역 주변과 버스터미널은 늘 초행자를 노리는 범죄꾼이 상주하고 있다.

세계여행을 하다가 그래도 우리나라가 새삼 고맙게 느낄 때는 밤거리를 비교적 안전하게 활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밤늦게 거리를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나라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배낭여행자의 이동수단은 대체로 현지인과 같은 저렴한 대중교통을 선호하는데 시스템이 안정적이지 않은 나라나 도시에서는 비싼 택시를 탄다고 해서 딱히 안전을 보장 받지 못한다.
물론 그 나라의 행정부에서 관리하거나 보증하는 택시나 보안요원이 동승하는 이동수단이 있다면 최고의 선택이 되겠지만 그 또한 가난한 배낭여행자는 가성비부터 따져야 한다.

시내에서 일반 대중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할 때는 승객이 너무 많거나 반대로 없는 경우는 될 수 있으면 타지 않는 게 좋다. 만원버스의 경우 소매치기나 잡범이 호주머니를 노리고 있고 승객이 거의 없는 버스에 혼자 있을 때는 갑자기 서너 명의 치한이 타서 강도로 돌변하기도 한다.

하나 더, 숙소에서 도난의 위험과 대처방법이 있는데 따로 배낭여행자의 숙소편에서 다루기로 하고 한 가지만 얘기하자면.

여러 명이 사용하는 다인실에는 침대 위에 귀중품을 두고 다니지 말아야한다.
불편하겠지만 화장실에 가거나 샤워를 하더라도 항상 제일 소중한 것들은 복대에 지니고 다니는 버릇을 들이는 게 좋다.
철제 개인 사물함이 있으면 숙소에서 제공하는 열쇠가 아닌 자신만의 열쇠를 채우고 다녀야 한다.
아주 당연하고 쉬운 안전요령이지만 이런 습관이 안 들어 있는 여행자들이 꽤 많다.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침대위의 물건들은 한순간에 마술처럼 사라질 것이다.

결론은 위험요소를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마지막 규칙은

모든 것은 운명이다.

먼저 `진인사 대천명`한 후에 그리고도 닥치는 불운은 그 또한 운명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아주 강력한 자가백신을 놓는 것이다.

말해놓고 보니 말인지 빵군지 뭔말인지 모르겠다.

서두에 `누구나 위험하다고 하는 곳에서는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보내고 모두들 안전하다고 하는 곳에서 어이없이 큰일을 당하기도 한다.`라고 썼다.

최근에는 선진적인 여행 인프라를 가진 유럽에서도 상대를 가리지 않는 과격한 테러로 인해 아무 죄 없는 불특정 다수가 희생되고 세계에서 제일 안전한 도시라는 일본의 도쿄에서는 예기치 않은 지진이나 자연재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속절없이 상해를 입는다.

이러한 불가항력적 대형사고는 아무리 조심하여도 피할 수가 없다.

단지 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사고를 당한 한 개인의 불찰이 아니다.

예전에 동행한 여행동생이랑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여행지가 어디일까하고 얘기하다 둘이 공감한 장소와 상황이 있었다.
만약 어느 나라에 갑자기 쿠데타가 일어나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절대권력을 잡은 자가 모든 정적을 소탕한 직후에 그 나라에 들어가면 제일 안전하다고 공감했던 적이 있다.
왜냐면 거리마다 백 미터 간격으로 총을 든 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는데 감히 어떤 간 큰 도둑들이 설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실제로 길 씨도 이 비슷한 상황을 몇 번 겪은 적이 있는데 2004년 첫 번째 아프리카 여행을 끝내고 요르단 암만의 여행자 숙소에서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호텔에는 한국인 여행자가 여럿이 있어 다음 날 같은 버스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하고 다 같이 홀에서 그날 뉴스를 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예루살렘의 중심 황금사원 근처에서 머리가 깨져 피범벅이 된 채로 도망을 다니는 팔레스타인과 총을 들고 쫓아가는 이스라엘 군인들을 중계하고 있었다.
며칠 전 팔레스타인 강성지도자 하마스의 야신을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에서 암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 후 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의 저항은 갈수록 심해지고 평소에는 팔레스타인 경찰에 의해 경비를 서던 상호 불가침 지대인 황금사원마저 이스라엘 군인에 의해 점령된 상황이었다.

이 뉴스를 보던 좌중의 분위기는 갑자기 심각해지고 아무 말 없이 한 명씩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같이 가기로 이미 약속을 했던지라 편치 않은 마음에 배낭을 메고 체크아웃을 하러 나왔는데 같이 가자던 사람들이 한 명도 안 보인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리셉션에 물어보니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는다는 쪽지를 남겨두고 아침 일찍 모두 숙소를 떠났다고 한다.
어째 표정들이 심상치 않더니 미리 말했으면 길 씨 혼자 배낭을 싸서 나오지 않았을 텐데....
아마 그들도 밤새 갈지 말지 고민하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싫어서 쪽지만 남겨두고 아침 일찍 사라진 모양이다.

이왕 배낭은 싸서 나온 김에 찝찝하고 불안하지만 일단 예루살렘 가는 버스터미널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혼자서 배낭을 메고 버스터미널에 갔더니 역시 정규버스는 운행을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 순간 누가 어깨를 툭 치더니 예루살렘이라고 속삭였다.

팔레스타인인지 이스라엘인지 아니면 요르단 사람인지 구분이 안가는 세 명이 택시처럼 보이는 승용차를 가리키면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묻는다.

불안을 동반한 마음속 갈등이 일기 시작했다.
정규버스기 다니지 않을 만큼 심각한 상황인데 굳이 위험을 무릎 쓰고 정체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기어이 예루살렘을 가야되나?

`그래 여기 버스터미널까지 왔으면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한 거야.`

배낭여행을 하다보면 목적지를 앞두고 포기하는 것이 마치 비겁한 선택을 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도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돌아설 때를 알아야 된다.
라고 머리로는 생각을 하는데 길 씨의 입에서는 오케이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에 씐 것처럼 어느새 그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국경에서는 그 악명 높다는 철두철미 이스라엘 보안검색을 서너 시간 당하고 입국도장을 받아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예루살렘의 성곽 안은 미로처럼 얽힌 골목들이 어지럽게 연결되어 있다.

한참을 골목을 돌고 돌아 호스텔을 찾아가는데 골목 어귀에서 다급한 발걸음소리가 나더니 웬 남자 하나가 길 씨를 휙 지나치고 곧바로 총을 든 이스라엘 군인이 그를 쫓아 또 다시 길 씨를 지나갔다.

그리고 몇 초나 지났을까? 탕하는 소리가 들렸다.

길 씨는 차마 고개를 돌려 처음 그를 지나친 그 남자가 어떻게 됐는지 확인하기가 두려웠다.
정적의 몇 초가 또 흐르고 멍하게 얼음땡이 되어 있는데 곧장 다른 이스라엘 군인들이 나타나고 골목에는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웅성거렸다.
뒤를 돌아보니 처음 길 씨를 지나쳤던 그 남자는 군인들과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쓰러진 다리만 보였다.
군인들은 순식간에 쓰러진 사내를 이송해가고 바로 상황은 종료되었다.

제대로 신고식을 치르고 호스텔을 겨우 찾아 들어가니 직원이 상당히 의아한 눈길로 길 씨를 바라보았다.
그 당시는 상황이 너무 심각해서 머물던 여행자들도 다 떠나는 마당에 혼자 배낭을 메고 제 발로 찾아오는 여행자가 있다니 신기한 모양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다음날부터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는지 예루살렘을 안전하게 다닐 수 있었다. 골목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총을 들고 경비를 서고 여행자가 귀해서인지 가는 곳마다 대접 받으며 넓은 호스텔을 길 씨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아마 길 씨가 들어간 날이 마지막 최악의 상황이었고 그 다음날부터 더 이상 소요가 일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예루살렘에서 유명하다는 성지들을 줄을 서지 않고도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위험을 알고도 예루살렘행을 택한 길 씨의 행동이 바른 선택일까?

당연히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행에 있어서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어디론가 가기도 한다.

정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되어 버렸다.

암만의 버스터미널에서 예루살렘을 선택한 것이 아마 그런 느낌이었지 싶다.

분명 이성적으로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엉뚱한 선택을 했다.

그러나 어찌하랴, 신께서 만든 이 모든 장난의 운명은 누가 억지로 시킨 것도 아니고 스스로 여행을 떠날 때부터 아니 여행이란 것을 선택했을 때부터 이미 각오한 바이다.

세 번째 규칙은 꼭 불가항력적인 사고를 당할 때만 아니고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합리적인 사후처리를 위해서 가져야하는 평정심 같은 것이다.

스스로에게 팔자소관적 운명론이라는 초강력 자가백신을 접종해두면 불가항력적 사고뿐만 아니라 여행 중에 겪게 되는 소소한 사건사고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다.

물론 시스템이 정상적인 나라에서는 각종 사고에 대비해서 여행자보험을 들어두면 사고가 나더라도 메뉴얼대로 처리하면 된다. 그러니 여유가 된다면 보험은 꼭 드는 것이 좋다.

그러나 장기여행을 하는 가난한 배낭족에게는 보험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그마저도 없이 다니고 또 보험이 되더라도 전액을 다 보상받을 수 없을 때가 많다.

숙소에서 도난 사건이나 렌트한 차가 사고가 난 경우 숙소주인이나 차주인과 소위 협상이란 것을 하게 되는데 이럴 때 당황하거나 흥분해서 일을 그르치는 수가 있다.

이미 벌어진 일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침착하게 상황 판단을 하고 협상에 임해야 최대한 많은 보상을 받아낼 수 있다.

그래서 세 번째 규칙을 맘속에 담아두면 이런 사고처리를 현명하게 할 수 있는 평정심을 가질 수 있다.


여기까지가 안전을 위한 세 가지 규칙이고 드디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여행 실전으로 돌입해보자.


# 여행실전 #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진짜 요령은 앞으로 출간될 책에 소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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